한 칸 집을 지어 경치를 독차지하다

2014.07.17 16:31:41

조혁연 대기자

백곡 김득신은 괴강이 내려다보이는 개향산 언덕에 취묵당을 건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생활공간인 초당(草堂)을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풀 草' 자에서 보듯 이때의 집은 사대부가의 격식을 갖춘 것이 아닌, 작고 허름한 초가로 여겨진다.

김득신이 초당과 관련해 남긴 글은 당시 괴산지역 공간과 자연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먼저 그가 남긴 '초당서'에는 광탄, 방간야, 성불산, 한림, 장군 등의 명사가 등장한다.

'성황당 서쪽 광탄 북쪽의 方干野(방간야)와 더불어 성불산이 펼쳐진 곳에는 언덕이 쓸쓸하지만 한림의 옛집이 있고, 남은 터가 활량하지만 장군의 옛 자취를 알 수 있는데 사람이 사는 연기는 끊어졌지만 풍월은 여전히 남아 있다. 주인은 천석고황(泉石膏亡+月)과 운림질고(雲林疾痼)가 있어서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붉은 먼지를 떠나니 초헌과 면류관에는 관심이 없고 강호에 백발을 비추며 낚시질함이 소원이다.'-<초당서 백곡집>

조선시대 고지도인 해동지도는 '成佛山'이 아닌 '佛成山'으로 표기했다.

인용문 중 '한림'은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부친 김치, '장군'은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조부 김시민을 지칭하고 있다. 그리고 성불산은 현재도 유통되는 지명으로 괴산 서쪽의 해발 530m 산을 지칭하고 있다.

근래 현 임각수 괴산군수가 이곳에서 전통 닥나무를 손수 발견, 한지체험박물관에 이식했다고 안내판에 명문으로 기록해서 이런 저런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산이다.

나머지 광탄은 취묵당 인근 수계의 여울이 심한 곳, 方干野는 주변 들판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되나 더 이상의 고증은 안 되고 있다.

김득신은 또 시간따라 변하는 17세기 우리고장 괴산 지역의 자연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버들, 소나무, 매화 등의 식물상이 등장하고 있다.

'푸른 절벽으로 병풍을 삼고 흰 구름으로 울타리를 삼네. 버들을 묻고 꽃을 찾으니 마땅히 물외의 뜻과 흥취를 돕고, 달을 비평하고 물을 이야기하니 또한 한가로움 속에도 옳고 그름이 있네, 층진 벼랑의 소나무를 마주하는데 어찌 조래산의 푸른 빛을 부러워하며, 언덕에 기댄 매화를 보니 유령의 싸늘한 매화향기와 다르지 않네.'-<초당서 백곡집 책7>

인용문의 조래산은 중국 산동선 태안에 위치한 산으로 소나무로 유명하고 유령 역시 중국 강서성 대유현 고개로 매화가 유명하다.

그는 초당 건립에 대한 글을 '초당상량문'에도 남겼다.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한 글로, 시각적인 느낌이 바로 와닿고 있다.

"한 칸의 집을 엮어서 수많은 골짜기의 경치를 독차지하고, 책을 보고 시를 읊는데 누가 능히 더럽히겠는가. 꽃을 찾고 버들을 물으니 스스로 회포를 풀만 하네. 지나가는 손님은 사립문에 말을 매고 이웃의 승려는 이끼 낀 길에 지팡이를 휘두르네. 비록 취묵당의 높고 트임과 거리가 있지만, 또한 개향산의 그윽하고 깊음과 비슷하네. 구불구불한 긴 강을 굽어보니 쾌청한 빛이 닦은 거울인 듯하고, 넘실대는 작은 못에 내려가니 가는 무늬가 비단과 같네."-<백곡집 책7>

그는 초당을 짓고난 뒤의 심사를 이렇게 표현했다. 만족하면서도 약간은 외로움을 나타내는 시다.

'개향산 입구에 띠집을 지으니 / 밤낮 창 사이로 푸른 남기가 스며드네 / 밝은 달은 지려하고 꽃은 땅에 가득한데 / 베갯머리의 외로운 꿈은 강남 땅에 떨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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