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본색

2014.09.21 14:33:05

김경수

시조시인

여우는 너구리와 함께 일을 했다. 여우는 몰래 물건을 팔아먹다가 너구리에게 들키거나 남에게 거짓말을 했다가 탄로나기 일쑤였다. 그런 와중에도 늑대를 자주 찾아가 늑대의 집안일까지 도우며 늑대가 시키는 일은 못된 짓이라도 주저없이 했다. 늑대와는 아주 친해졌다. 여우는 높은 자리로 오르면 오를수록 있어야 할 물건은 점점 줄어들고 재물을 받고 한 거짓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여우를 비난하는 소리도 커져갔다. 그 중에 노루의 목소리가 제일 크게 들려왔다. "언제가는 늑대도 당할걸!"

여우는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늑대를 찾아갔다.

"요즘 소문 들으셨어요?"

늑대가 대답했다. "소문은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거야"

여우가 말했다. "아니예요! 이건 노루가 다 꾸민 짓이예요. 자기가 끌려갔던 분풀이로 이런 소문을 퍼뜨리고 있어요. 실은 왕비 옷은 노루가 일부러 찢었던 거예요"

늑대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뭐?"

노루가 끌려가 두들겨 맞고 쫒겨났다.

너구리가 기가 막혀 늑대를 찾아갔다.

"창고안의 물건을 여우가 다 팔아먹었어요."

늑대가 대답했다. "글쎄?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여우는 너구리도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너구리가 저한테 누명을 씌우려고 해요"

늑대가 물었다. "증거가 있냐?"

여우가 말했다. "네. 있어요. 고양이가 보았어요"

고양이는 여우가 시키는대로 한 것 뿐이었다. 너구리 또한 두들겨 맞고 쫒겨났다. 여우는 두려울게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동안 왕이 되려고 일을 꾸미고 있었던 늑대가 끌려갔다. 늑대와 친하거나 꾸미는 일에 관련된 동물들은 잡아가 처형하거나 옥에 가두었다.

후임으로 온 개가 말했다. "늑대와 일을 꾸몄느냐?"

여우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개가 말했다. "너는 늑대와 친하지 않느냐?"

여우가 대답했다. "친하지도 않을뿐더러 늑대를 잘 모릅니다. 보잘것 없는 천한 주제에 저는 감투가 싫다고 했는데 늑대가 왕의 명령이라고 해서 썼습니다. 그런 나쁜 놈에게 저도 속은 것입니다"

늑대가 말했다. "교활한 여우, 배신자! 이제야 본색을 들어내는구나. 내 앞에서 살살거리며 사정할 때가 언제인데, 그동안 여우도 함께 일을 꾸몄다"

여우가 울면서 애원했다. "늑대를 믿지 마십쇼"

사자왕이 말했다. "궁녀 주제에 뭘 알겠느냐?"

늑대가 처형되었다. 여우는 궁녀로 돌아가 족제비와 일을 하게 되었다. 여우는 족제비를 보자마자 뒤를 캐고 헐뜯기 시작했다. 개는 여우가 꾸민 짓인 줄 알고 족제비를 다른 일터로 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쥐를 보냈다. 여우는 모르고 있었다. 쥐는 여우에게 당한 동물들이 보낸 사신이었다. 여우는 쥐가 하는 일은 알 수 없어도 쥐는 여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욕심의 본색은 상황과 입장에 따라 자신의 태도와 처지를 바꾸거나 변하는 것은 물론 그 이상이 따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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