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친구야

2014.09.22 15:50:51

박선예

충북도 문화관광해설사·수필가

너를 만난다는 흥분 때문인지 안개비가 내리는 줄도 모르고 집밖을 나섰단다. 고개를 드니, 스멀스멀 간질이는 감촉이 정말 좋구나. 머리가 젖거나 말거나 그냥 걸었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거울을 보니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구슬들이 잔뜩 앉아 있더구나.

너 기억하니? 나랑 처음 노래방에 갔던 날을. 몰래 맥주를 가지고 들어가서 쭉 마신다음 노래를 시작했었지. 음치에 박자치인 내가 부른 노래가 바로 '구슬비'라는 동요였어. 넌 김추자의 '무인도'를 불렀고. 정말 혼신을 다해 부르더구나. 넌 펑펑 울면서 노래를 불렀지. 파도가 부서지듯 바람이 흐느끼듯 가슴에 숨겨두었던 한과 고통을 온몸으로 토해내더구나. 아마 그때부터일거야. 우리사이의 벽이 허물어진 것이.

너를 처음 본 날은 어느 신문사의 출판기념회였지. 꽃이 핀 다음에야 꽃대가 길어지는 민들레처럼 마냥 가련해 보였었어. 하지만 너의 눈빛은 활활 불타고 있었지. 그날, 쓰지도 떫지도 않은 민들레 진액처럼 넌 내게 참 독특한 존재로 자리 잡았단다.

너는 벼이삭 패는 냄새를 유난히 좋아했었지. 그 냄새를 맡지 못하는 나를 보고 왜 이 좋은 냄새를 모르냐고 무척 안타까워했었지. 넌 저수지에 비친 석양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 자, 보아라. 저 붉은 기둥을. 얼마나 강한 힘인가라고 외쳤었지. 치근거리는 남자에게 포악을 떠는 나한테 참아라 그것도 하나의 보시이니 하며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고, 지인들과 동동주를 마시다가 갑자기 엄마냄새가 난다며 펑펑 운적도 있었지. 난 그제야 네 엄마가 밀주를 해서 너희 남매를 뒷바라지했다는 사실을 알았단다.

때로는 넌 천방지축이었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예측할 수 없는 행동도 많이 하였지. 술이라도 한잔하면 빨아들일 듯 바라보았고, 거침없이 음담패설을 뱉어내었으며, 세상과 하직할 듯 우울해하다가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지기도 했었잖아. 그 많은 돌발 사태 중에서 가장 예기치 못한 일이 무엇인줄 아니? 그건 바로 이사얘기야. 암담하더라. 나는 누구와 사랑을 말하고 이 시대를 나누며 꽃이 피는 아픔과 바람의 외침을 느낄 수 있을 런지 그저 황망하고 화가 나서 막 패주고 싶었단다.

너도 내 마음을 아는 것 같더라. 넌 먼 산을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지. 어쩌니. 우선 남편을 살려야지. 그래야 나도 살고 아이들도 살 수 있잖아. 그렇게 말하는 네가 무척 슬퍼 보이더라. 그래 네 말이 맞아. 너나 나나 엄마이고 아내이니 가정을 위해 남편의 뜻에 따르자꾸나. 남편의 그늘에 안주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자꾸 자기체면을 건다면 반드시 우리 곁으로 행복이 다가 올 테니깐. 언제인가 네가 말했지. 지독하게 슬프거나 우울하면 활짝 웃는 내 얼굴을 생각한다고. 그러면 조금은 위로가 된다고 말이야. 친구야, 내 생각 안 해도 좋으니 이젠 너에게 기쁜 일만 가득했으면 정말 좋겠다.

너를 만나는 설렘 때문에 밤잠을 설쳤단다. 흔들리는 차에 앉아 있으니 자꾸만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잠시 눈을 붙이고 너를 추억하려한다. 기다려라 친구야, 지금 내가 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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