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白翎), 그 고도(孤島)에서

2014.10.14 13:17:26

방광호

청석고등학교 교사

10월 4일 새벽, 어렴풋이 눈을 떠보니 객실 유리창 너머 북녘 하늘의 북두칠성이 그린 듯 선명했다. '아하, 별은 언제 어디서나 저렇게 제 모습을 드러내며 빛을 발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어제 오후 심청각에서 바라보았던 북쪽 장산곶은 터무니없는 공간이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앞 인당수와 연화봉 또한 효녀 심청이가 부침(浮沈)했던 문화적, 민족적 공간인데 어찌하여 '북녘 땅'이라 불러야 하는가. 왜 우리는 그곳을 탄식과 함께 바라보아야만 한단 말인가. 아직도 총부리를 제 몸에 겨눈 듯 대치하고 있는 냉엄한 현실 속에서 장산곶은 이산의 아픔으로 짓눌린 채 살아가는 동포들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기다랗게 누워 있었다.

서해 최북단의 청정 해역이라는 '백령도' 가는 길이 나에겐 참으로 멀기만 했다. 3일 오전 8시 반, 인천에서 출항하여 소청도와 대청도를 거쳐 백령도까지 대략 4시간이 소요되는 뱃길이랬다. 그런데 덕적도를 비롯한 주변 도서지역은 운항이 취소될 정도로 바람이 심해, 2000톤 급 쾌속선 '하모니 플라워호'도 바람과 물결의 힘을 견뎌내지 못하였다.

오래지 않아 여기저기서 중상을 입은 전쟁터의 병사들처럼 신음소리가 2층 선실에서 피어 올랐다. 토사물로 인한 냄새마저 진동을 하고보니 나의 어지럼증은 차라리 고문이었다. 연민 가득한 표정으로 아내가 바라보고 있었으나 그 시선조차 내겐 멀미였다. 소청도까지 사투를 벌이며 저승 문턱에서 방황했다. 앞으로도 1시간쯤 가야한다기에 절망에 잠겨 전전긍긍하다보니 뜻밖에도 백령도란다.

숙소 식당에서 누추한 몰골들을 손가락질로 냉소하며 비워냈던 속을 다시 채웠다. 먹어야 기운을 회복하고 꼼지락거릴 수 있는 동물들이 아니던가.

가는 곳마다 천혜의 비경인 백령도에서 연화리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은 잠시 여행객들을 숙연케 하였다. 게다가 탑에서 고작 직선거리로 2.5km 지점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이 있었다니, 그들은 누구를 위해 산화했으며 이 비극의 끝은 언제인가, 실로 비감할 수밖에 없었다.

장수들이 모여앉아 회의를 하는 모습 같다 하여 붙인 두무진(頭武津) 해안의 기암 절경은 백령도 여행의 압권이 아니었나 싶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란 시 구절처럼 이 청정한 지역의 원시성이 아직도 혼돈에서 막 빠져나온 듯 말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려 충신 이대기는 서해의 해금강이라 일컫는 이곳을,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극찬했다는데, 가히 상상력까지 자극하는 부족함 없는 표현인 듯싶었다. 더구나 우리가 도착했던 시간에 낙조가 진행 중이었으니 그 장관은 먼저 가슴으로 새기고 나서 사진으로 찍었을 터이다. 다음날의 선상 유람이 다시 한 번 두무진에서의 감동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수억 만 번 씻기고 깎여서 이루어졌을 콩돌해안을 맨발로 거닐며, 하루빨리 군부대의 해안초소와 철조망이 역사의 유물로 퇴색해 가기를, 그리고 저 위령탑 한가운데서 피어오르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우리 민족의 앞날이 수억 년 이어지기를 빌어보는 것은 나만의 소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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