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惡)플 다는 세상, 선(善)플 다는 아이들

2014.10.14 13:16:49

김지연

청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사

"선플이란, 착한 댓글인 '善플'과 먼저 좋은 말을 한다는 '先플'의 의미가 있어"

나의 눈이 반짝거린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의 고개는 갸우뚱한다. 아, 이 열정과 냉정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3월, 우리 학교 신생 동아리 선플누리반 창단을 위해 교사 혼자 진땀 흘리며 홍보 중이다. 학생들의 시선을 끌만한 아기자기한 플랜카드도 화려한 스펙도 매력적인 선배도 없는, 이 동아리에 학생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선생님! 선플동아리는 악플에 대항해서 좋은 말을 퍼뜨리는 활동을 하는 거네요!"

아, 고맙다. 우리 학생들! 어쩜 이렇게 선생님 마음을 잘 아니. 가로로 갸우뚱 기울였던 우리 학생들의 고개가 세로로 크게 끄덕거린다. 이렇게 해서 우리 학교에 처음으로 24명의 선플 천사들이 탄생하였다.

선플누리반 학생들은 착한 댓글로 가득한 화수분을 들고 전 세계를 종횡무진 활보하였다. 물론 인터넷 공간에서이지만 말이다. 희주와 소희는 스스로 바른 말을 쓰고 건강한 비판 활동을 하겠다는 선플 선언문을 작성하고, 민지와 혜원이는 자신의 인터넷 언어 습관을 체크해 보는 설문 활동도 하였다. 연주와 효정이는 '우아한 거짓말'의 '천지'를 만난 후 앞장서서 학교 폭력을 막겠다고 다짐했고, 지현이와 영은이는 중국으로부터 온 가슴 따뜻한 이야기에 응원의 마음을 실었으며, 소영이와 연희, 그리고 경미는 세월호로 멍든 가슴을 누구보다 따뜻하게 위로하였고, 지연이와 혜영이, 그리고 단음이는 무국적자로 살아가는 소년에게 용기를 주었으며, 주영이와 정희, 하영이는 바른 말과 바른 글을 사랑하는 열렬한 한글 수호자가 되기도 하였다. 선플누리반의 첫 축제 때는 오프라인 선(先)플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말, 칭찬의 말, 응원의 말, 화해의 말 등을 포스트잇에 적어 보드에 붙이면, 선플누리반 학생들이 1일 우체부가 되어 대신 편지를 전달해 주는 활동이었다.

이 가을, 우리 학생들은 얼마나 자랐을까. 나영이는 선플의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할 줄 알게 되었고, 수진에게는 스스로 좋은 기사를 선별하는 능력이 생겼다. 민지는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알게 되었고, 세희는 좋아하던 아이돌만큼이나 재능기부자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지는 논리적으로 말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현정이는 선플 캠페인을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하는 능력이 생겼고, 수현이는 여러 사람에게 멋진 조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살짝 뒤로 물러가 있어도 잘한다. 공감하는 능력도 어느새 쑥 자랐고, 비판적인 생각도 확 성장했다. 게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뱉던 비속어와 은어가 이제는 어딘가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 참 예쁘다.

우리 학생들에게는 인터넷이 필수품이고 생활이다. 공부방이며, 운동장이고, 놀이터이다. 악플은 특정인을 괴롭히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 소리 없는 무기와 같다. 우리가 청소년들을 교육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손에 무방비 상태로 무기를 쥐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악플이 범람하는 이곳에서 십대들의 착한 문화가 연꽃의 작은 씨앗처럼 심어져서 언젠가는 크게 꽃 피우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 아이들의 작지만 큰 열정에 손바닥이 뜨거워지도록, 세상이 뜨거워지도록, 끊임없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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