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의 지평을 넓혀야 할 때

2015.05.25 13:39:52

윤기윤

[충북일보]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대지의 신은 여신이다. 대지의 여신은 만물을 소생하게 하고 성장시킨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신화나 설화에도 지모신이 등장한다. 땅의 만물을 길러내는 지모신은 지상의 모든 생명을 골고루 자애롭게 돌본다. 이토록 어머니의 품은 원래 넓은 것이다. 우리나라 일부 여성 작가들에게서 보이는 에코페미니즘 경향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의 특질과 환경 생태는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는 인류가 앞으로 지향해 나가야 할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모성성의 에너지로 치유되거나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옛 중국의 전설에는 온몸이 으깨어지는 신체적 학대에도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던 여인이 자기 자식을 내던지자 수십 년간의 침묵을 깨고 비명을 질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자식에 헌신하는 여성의 힘은 대단하다. 그런데 이러한 위대한 모성이 자기 자식에게만 국한되어 발현될 때 그 위대함은 빛을 잃어버리고 이기적이고 추악한 모습으로 변질된다. 남의 자식이야 어떻게 되든 내 자식만 소중하게 감싸고 도는 어머니의 모습이 무한 경쟁 시대를 질주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따라서 요즘 문제시 되었던 잔혹동시도 이와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10살짜리 초등학생이 <솔로강아지>란 시집을 냈는데 그 중 '학원가기 싫은 날' 이란 시에서 엄마에 대한 감정을 너무도 잔혹하게 생생히 묘사하여 논란이 되었다. 결국 출판사는 시집 '솔로 강아지'를 전량 회수하여 폐기하고 말았다. 시 한 편 때문에 다른 시들도 빛을 잃어버렸고,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우선 이 꼬마 시인에게 시집 폐기라는 상처를 남겼다는 점이다. 어른들이 사전에 이를 막지 못한 것도 한탄스럽다. 그 시 한 편만 제외하고 시집을 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상상하는 모든 것이 활자화되거나 그림이 될 수는 없다. 천륜을 거스르는 잔혹함과 괴기스러움이 예술적 외피를 쓰고 있다고 해서 인쇄매체에 공개되어 사람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학적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모든 상상력이 다 문학적으로 가치 있는 것은 아니며, 혼자의 극단적 상상이 공적인 장소로 얼굴을 내미는 것은 사회의 폐해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표현의 자유니 상상력의 침해, 아이의 문학적 재능' 등 모든 이슈를 떠나 왜 아이가 엄마에게 그러한 망상을 갖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먼저 짚어보고 싶다. 아이가 '학원가기 싫은 날'에서 그 잔혹한 상상력의 대상이 된 아이 엄마는 그 시를 읽고 아이의 학원을 끊었다고 하는데 그 엄마는 이웃의 보통 엄마일 것이며 바로 우리의 얼굴일 것이다. 전에 부모교육 특강을 듣던 중 인상적인 예화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아이들의 그림 중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모습'이란 제목이 달려 있는 그림이 있었는데, 엄마가 자신의 컴퓨터 옆에 조용히 다가와 서 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자신의 자유를 억압하고 공부만 시키려하는 엄마의 존재가 가장 무섭고 싫었던 것이다.

내 아이가 공부 잘해서 누구보다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놓여나 부모로서 좀 더 아이에게 느긋하고 여유있는 시선을 가진다면 엄마에 대한 '잔혹 동시'는 더 이상 쓰여지지 않을지 모른다. 자녀 또래의 모든 아이들을 내 아이처럼 품어주는 넓은 사랑을 가질 때, 내 아이도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해질 것이다.

/ 윤기윤기자 jawoon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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