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도 문화가 되는 사회

2016.06.13 16:25:26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동성애자(Gay)들은 호모(Homo)로 불리는 것을 질색한다고 들었다. 호모라는 단어가 19세기 후반 정신분석학자들이 동성애자를 '호모섹슈얼리티', 즉 성적 흥분과 만족을 얻기 위해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을 선택하는 성도착행위로 설명한 것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란다.

일반적인 이성애자들은 동성애를 큰 병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이성이 아닌 동성에게 성욕을 느끼는 게이들을 바바리맨 같은 비정상 성욕자보다 한층 더 심각한 변태로 질시하기도 한다.

동성애자들이 들어내 놓고 사용하는 퀴어(Queer) 역시 일반적으로 경멸이 깔린 단어다. 그런데 이상한, 색다른, 기묘한, 괴상하단 뜻의 형용사 퀴어가 슬그머니 이상성애자를 포괄하는 단어로 굳어졌다. 그야말로 퀴어스런 변화다.

퀴어는 성소수자인 동성애자에 대한 개념으로 사용되다가 동성애자 인권 운동이 시작되며 성 소수자 전반을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 잡게 됐다.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을 퀴어로 당당히 내세우고 있지만 어쩐지 자신들이 남과 다른 기묘한 존재라는 자조적 외침으로 느껴진다.

퀴어문화축제(KQCF, Korea Queer Culture Festival)란 이름의 성 소수자 축제가 우리나라에서도 열리고 있다. 2000년에 처음 개최되었으니 올해로 벌써 17번째다.

첫해에는 몇 십 명 정도가 눈치를 보며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수준이었으나 지난 주말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올 동성애 문화축제는 수 만 명이 참여하여 북새통을 연출했다. 이런 상황을 비약적인 발전이라며 흥분하는 희한한 분위기까지 일고 있다. 동성애자의 기묘한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나온 인파도 있었겠지만 동성애자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물결에 신기함을 넘어 놀라움이 느껴진다.

퀴어들의 주장도 당당해졌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가 판을 치고 있는 한국 사회를 향해 "그래, 우리 변태다, 어쩔 테냐?(We are here, we are queer, get used to it)" 라고 역으로 따져 묻는 도발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인데, 더 이상 남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이해된다.

퀴어문화축제 2016의 공식 슬로건은 '퀴어 아이 엠(Queer I AM: 우리 존재 파이팅)'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에 굽히지 않고 싸우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자신들이 내세운 구호대로 퀴어들은 동성애를 비난하는 기독교단체 등 시민단체에 위축되기는커녕 조롱을 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특히 작년 퀴어 페스티발을 반대하는 기독교협회의 공연 배경음악이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이었음을 지적했다. 대표적인 게이인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동성애 혐오 공연에 사용한 것이 포복절도한 개그였다며 비아냥거리고 있는 것이다.

슈베르트, 헨델 등 동성애자로 의심되는 음악가가 다수 있지만 차이코프스키는 가장 대표적인 게이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사회적으로 매장될까 두려워 자신을 연모한 여제자 안토니나 밀류코바와 위장결혼을 했지만 아내의 성관계 요구는 죽음과도 같은 스트레스였다. 아내를 두고도 남성들과 교제를 멈추지 않았던 그는 페르머 공작의 조카와 사귀다 동성애 혐의로 고소당했고 명예를 위해 동문들이 구해 준 비소를 마시고 자살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게이의 음악을 게이축제 반대 공연에 이용한 것이 개그라는 퀴어들의 주장이 사실 더 개그스럽다. 차이코프스키의 명곡을 게이의 음악인양 우기는 것도 당치않지만, 게이임을 들키지 않으려 차라리 명예자살을 택한 차이코프스키를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행동은 더욱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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