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집아기의 슬픔

2016.06.27 16:23:22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섬집아기는 누구나 부를 줄 아는 국민동요다. 6·25 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왔던 한인현 선생은 어느 날 해변을 산책하다 우연히 해변 가의 외딴집을 들여다보게 됐다. 빈집엔 아기 혼자 잠들어 있었다. 굴을 따러 나갔던 아이 어머니가 낯선 사람이 집을 기웃거리는 것을 보고 놀라 달려 왔고, 그 모습을 마음에 새겼던 시인이 노랫말을 지었다고 한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그런데 아이를 재울 때 가장 많이 불러주는 노래 중 하나인 이 아름답고 나른한 동요가 지금의 잣대로 재면 아동학대의 일종인 아동방임의 상황이라는 말을 들었다.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인가 싶어 가사를 짚어보니 괜한 생트집이 아닌 듯싶다. 아기를 혼자 빈집에 두고 굴을 따러 간 아이엄마의 행동을 우리는 짠한 마음으로 동정하며 넘겼지만 사실 심각한 방임임에 틀림없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방치된 아동에 대한 개념과 지원의 체계가 미미한 상태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전한 발달을 필요로 하는 아동에게 보호와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는 행위를 방임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아이가 돌보는 이 없이 혼자 집에 있는 것을 학대로 여기는 의식 자체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구체적으로 '13세 미만의 아동이 보호자 없이 1시간 이상 혼자 있는 상태'를 방임 행위로 간주한다. 아동이 혼자 하교하거나 길거리를 다니는 것도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심지어 혼자 도서관에 오는 아이도 신고대상이다. 아이가 혼자 도서관에 오면 사서는 보호기관에 즉시 이를 신고하고, 당국은 신고를 받는 즉시 아동의 부모를 조사하여 권고 조치한다. 이웃 역시 아동방임 상황을 목격하면 반드시 관계기관에 신고해야할 의무가 있다.

영국은 각 지역의 아동센터가 아동이 방치되는 상황을 막고 지원하는 지역 거점센터의 역할을 한다. 알코올 중독 등 심신미약으로 제대로 아이를 돌볼 수 없는 부모들을 위한 치료와 상담은 물론 부모역할 교육과 취업지원까지 맡고 있다. 퇴근이 늦는 부모를 위해 시설이나 가정에 직접 돌보미가 파견돼 아이를 보호하는 시스템은 기본이다. '과연 이래서 선진국인가보다' 고개가 숙여지는 부러운 정책들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아동방임과 학대의 행태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다. 최근에도 기저귀조차 채우지 않고 발가벗긴 채 원룸에 종일 갇혀 있던 3살 아기가 방안에 용변을 봤다는 이유로 엄마의 동거남에게 폭행, 살해됐다.

만취해 집에 들어온 남자는 냄새가 역겹다며 아기를 패대기쳐 살해한 뒤 숨이 끊어진 아이 옆에서 태연히 잠을 잤다. 역시 술에 취한 채 새벽에 귀가한 아기 엄마도 제 잠자리 챙기기에만 바빴다. 짐승도 제 거처에 들면 새끼 먼저 핥아주는 법인데, 친어미조차 몰라라 밀어둔 아이의 시신은 31시간 동안이나 방치됐다.

자식을 굶기지 않으려 일하러 나가면서 할 수 없이 아이를 문고리에 묶어 놓았던 시대가 있었다. 동요 섬집아기가 만들어진 6·25 전쟁 무렵의 슬픈 역사다. 그러나 엄마의 마음은 문고리에 묶여 방바닥을 뜯고 노는 아기에게 온통 기울어 있었다.

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나라의 살림이 좋아졌으나 아동방임은 개선되기는커녕 전혀 다른 형태로 악랄하게 변질됐다.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에 제대로 일을 마치지 못하고 달려오는 모성마저 사라진 우리 모습이 더욱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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