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무엇이 어려운가

2016.08.08 15:25:50

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한참 전에 회자되던 퀴즈가 있다. "기자, 경찰, 세무공무원, 학교 선생이 모여서 술을 먹으면 술값은 누가 낼까?" 질문 받은 사람의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른 답이 나오지만 '술집 마담'이 정답이다.

하나같이 대접받는 데만 익숙한 사람들인지라 아무도 지갑을 열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기다리다 속이 터진 마담이 욕을 하며 계산을 한다는 유머에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재미보다 정곡을 찌르는 통쾌함에 터진 웃음이었다.

퀴즈 2탄은 '이들 네 사람 중 세 사람에게 대접을 받는 사람은 누구일까'였는데, 답은 제 자식의 선생님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인 일명 '김영란법'이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으로 오는 9월 28일부터 전격 시행 예고되면서, 법적용 대상자와 식사 시 계산을 어떻게 해야하나하는 문제가 사회적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법의 취지는 모여서 먹은 밥값을 각자 계산하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용돈을 타 쓰는 학생이나 주부도 아닌 멀쩡한 성인 몇 명이, 먹은 밥값을 서로 각출해 지불하는 것이 이제까지의 사회정서로는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카운터에서 서로 계산을 하겠다며 거의 다투듯 언성을 높이는 광경 또한 어색치 않았다.

제가 먹은 밥값을 제가 따로 계산하는 지불방식을 더치페이(Dutch pay)라고 부른다. 네덜란드인들의 접대인 더치 트리트(Dutch treat)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지불하다라는 의미의 페이(pay)로 바뀌었다. 더치페이는 우리가 만든 콩글리시인 셈이다. 영어권에선 가볍게 고 더치(go Dutch)라 쓴다.

원래 네덜란드인들은 우리와 비슷한 접대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통 크게 한 턱 쓰는 네덜란드인들의 접대법인 더치 트리트가 각자 계산법으로 의미가 완전히 바뀐 것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갈등 때문이었다.

1602년 네덜란드가 아시아 지역 식민지 경영을 위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세우면서 영국과 네덜란드는 식민지를 놓고 충돌하게 됐다. 네덜란드에 대한 적개심에 불탔던 영국은 네덜란드 사람을 비하하기 위해 네덜란드를 뜻하는 더치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Dutch와 결합된 영어 단어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를 담게 됐다. 네덜란드식 경매(Dutch auction)는 서로 짜고 하는 사기경매, 네덜란드식 매매(Dutch bargain)는 술자리에서 맺는 매매계약, 'Double Dutch'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황설수설이다.

접대문화인 더치 트리트도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네덜란드인처럼 각자가 지불하는 방식이란 의미로 왜곡됐다. 같이 식사를 한 뒤 음식의 비용은 각자가 지불하는 것이 네덜란드 사람들의 문화처럼 오해하게 만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후 서양 문화의 변화다. 합리성을 존중하는 의식이 자리 잡으면서 더치 트리트는 본받아야 할 가장 합리적인 문화의 상징처럼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의 분위기 탓에 아직까지는 각자 계산문화가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꼭 김영란법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더치페이는 자연스럽게 뿌리내려야 할 합리적인 문화임에 틀림없다. 먹고 싶은 음식 편하게 골라 먹은 후, 각자 계산하는 지불 방식이 힘든 일인가. 당연히 접대 받아야 한다고 여겼던 뻔뻔함이 부끄러운 범죄였음을 반성하며 고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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