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전쟁 17회

2017.01.05 15:25:46

권영이

증평군청 문화체육과장

"김 사자님. 오늘 영화관에 갈까?·

"뜬금없이 영화관에는 왜?"

"헤헤. 뭐, 영화도 한 편 보고요. 또 거기에 어떤 사자들이 들락거리나 궁금하잖아요. 우리 한 번 가요. 네?"

동방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졸랐다.

"알았네. 같이 안 가면 가만 안둘 것 같은 얼굴이군."

동방은 내 팔을 잡아당기며 당장 가자고 서둘렀다. 나는 마지못해 그에게 끌려갔다. 영화관에는 나이와 성별과 생김새, 옷차림이 다른 사람들이 북적였다. 사람들의 모습이 다른 만큼 다양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 중에 온갖 욕심과 증오가 덕지덕지 묻은 영혼의 구리한 냄새가 가장 심하게 났다.

내 옆을 스쳐가는 사람들마다 다른 냄새가 났고 나는 그 냄새만으로도 영혼의 생김과 품질등급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동방은 눈을 번득이며 여기저기를 살피더니 내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사자님. 저기 보세요. 귀에 이어폰을 꼽고 다리 흔드는 애 옆에 서 있는 저 사자님도 영화 보러 왔나 봐요."

동방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샤프심이 보였다. 턱이 가늘고 뾰족하다고 모두들 샤프심이라고 부르는 사자였다. 날렵하고 센스도 있는 그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렸다. 그 또한 자기가 샤프심이라는 걸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우리도 저 사자님이 보는 영화 보러 가요."

동방이 내 팔을 잡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그의 뒤를 바짝 쫓아갔다. 그는 애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는 젊은 남자 어깨 위에 걸터앉았다. 우리는 그보다 두 줄 뒤에 앉았다. 그가 앉은 자리를 지날 때 그에게 손 인사를 했는데 그는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눈은 바로 앞에 앉아있는 남학생을 주시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매표소 앞에서 귀에 이어폰을 꼽고 다리를 흔들던 아이였다. 그에게서는 아직 덜 익어 떫은맛이 나는 풋사과 냄새가 났다. 냄새를 맡는 순간 뒷머리가 찌릿하고 당겼다. 샤프가 여기 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동방은 앞에 앉은 사람의 어깨를 잡고 서서 샤프를 살폈다.

"동방. 자네도 알고 있었나?"

동방이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 소리를 조그맣게 냈다. 나는 고개를 끄떡여주었다. 영화는 조직폭력배들과 정치권과의 암합으로 세력다툼을 하는 내용이었다. 스릴이 있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 눈빛에서도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된 지 삼십여 분 흘렀을 때 그 아이가 졸기 시작했다.

'응? 이런 영화를 보고 졸다니…….'

나는 동방에게 눈을 돌렸다. 그 순간 동방도 나를 보았다. 우리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동방은 순식간에 샤프를 향해 날아갔고 남학생의 머리를 만지고 있던 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졸고 있던 남자애가 머리를 털고 고개를 들었다.

동방과 나는 그를 밖으로 끌어내서 그가 움켜쥐고 있는 손을 강제로 폈다. 거기에는 그가 방금 남학생에게서 몰래 빼낸 푸르스름한 영혼 한 조각이 있었다. 우리가 강제로 손목을 펴는 사이에 샤프가 힘을 주었는지 상처가 나고 말았다.

"에이, 어떡해."

동방이 발을 동동 구르며 울먹거렸다.

"야! 너 뭔데 남의 일에 끼어들어?"

샤프가 동방을 향해 주먹을 날렸고 동방이 몸을 빙그르르 돌려서 주먹을 피했다. 샤프가 씩씩대며 동방을 노려봤다. 뒤에서 둘이 하는 양을 지켜보다가 샤프 앞으로 갔다.

"하하. 영화 보러 오셨소!"

"아,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샤프가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동방이 그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이 깨져버린 혼은 어떡하고 도망가려고 하세요·"

샤프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소리를 질렀다.

"야! 어차피 인간들 혼 중에 망가지지 않은 게 있냐? 이놈이 누구 앞에서 건방을 떨고 지랄이야!"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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