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필요해

2017.01.08 16:46:24

이혜진

충북고용혁신추진단

얼마 전 조용한 새벽녘 편의점에서 일하는 청년이 잠시 카운터에 앉아 불편한 자세로 엎드려 자고 있는 사진을 보고는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모두가 곤히 잠든 시간인데 청년은 왜 그 시간에 편의점에서 엎드린 채로 쪽잠을 자야했을까?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뱃속에 작은 점으로 아이가 생겼을 때부터 시작되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은, 좋은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밤새 줄을 서서 입학 자격을 얻어내고, 수행평가 만점을 위해 과목별로 훌륭한 학원과 과외선생님을 찾아내고, 입시설명회의 맨 앞자리를 사수하여 아이들의 대입 전략을 고민하는, 그야말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처럼 치밀하고 고도화 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장기프로젝트에서 '취업'이라는 영역만큼은 철저히 아이들의 '자율'에 맡긴다. 그리고는 새벽녘 아르바이트에 지쳐 쪽잠을 자고 있는 청년들에게, 부모님과 부모님 친구 분들, 대학교 후배들의 눈을 피해 콩나물시루 같은 공무원 입시학원으로 향하는 청년들에게, 집에 있는 것이 눈치 보여 pc방에서 이력서를 출력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어른들은 왜 더 큰 꿈을 가지지 않느냐고, 왜 아직 거기에 있냐고, 너의 꿈이 고작 이거냐고 다그치기만 하는 걸까? 분명히 대학교에 갈 때까지만 해도 부모님과 나는 한 팀이었는데….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그들이 가야 할 길을 정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으리라. 수행평가를 위해 이미 훌륭한 선생님이 대기 하고 있으니 이를 대비할 전략을 짜 볼 기회도, 대학 입시를 앞두고도 이미 치밀하게 준비해 주신 좋은 대학(부모님이 원하시는)에 들어 갈 계획에 맞춰 아이들은 그저 말썽 부리지 않고 잘 따라 주기만 하면 된다.

그 길을 따라 걷다가 마주하게 되는 무한한 자유만이 있을 줄 알았던 대학생활을 시작한 아이들에게, 갑자기 이제는 너의 미래를 위해 너희들 스스로 길을 개척하라고, 너의 꿈은 스스로 찾으라며 더 이상 그들을 위한 길을 찾아주지 않는다. 더듬더듬 그들의 꿈이 무엇인지,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 고민하는 동안 TV 드라마에서는 으리으리한 건물의 깔끔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젊은 실장님, 본부장님들이 주로 등장하고, 엄마 친구 아들은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기업에 취업 되었다며 밥을 사셨다고 한다. 하루에 이력서를 100군데 넘게 보내도 면접으로 보러 오라는 회사의 연락은 감감 무소식이고, 부모님은 그러고 있느니 토익학원을 다니든지, 공무원 시험이라도 준비하라고 하신다.

인터넷 쇼핑으로 구두를 하나 사려고 여기저기 서핑을 하다가 살까 말까를 3일을 넘게 고민 한 적이 있다. 내가 선택한 구두가 유행에 뒤처지지는 않는지, 발은 편할지, 다른 구두와 비교해서 가격은 적당한지 등등 구두 한 켤레 사기위해 고민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물며 평생 나의 삶의 방향이 정해 질 수도 있는 '직업'을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보와 고민이 필요할까?

이들이 미래를 결정하는데 있어 어른들의 역할은 그들을 다그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회사에서는 잘생긴 실장님 본부장님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고, 일하게 될 사무실이 드라마처럼 깔끔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런 것들은 직장과 직업을 선택할 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세상에는 너무너무 재밌고 비전 있는 직업들이 많이 있다고, 먼저 그 길을 걸어 본 경험자로써 좋은 선택을 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선배'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새벽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이런 저런 학원으로 향하는 젊은이들이여, 힐끗 힐끗 눈치 보며 서두르지 마세요. 지금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화이팅!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