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줄 새해 사자성어가 없다

2017.01.08 16:45:07

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칼럼니스트

충청도를 지칭한 사자성어는 '청풍명월(淸風明月)'이다. '맑은 바람 밝은 달'이란 뜻이니 우선 아름다운 말 같다. 그러나 이 네 글자에는 술에 물탄 듯 흐리멍덩하다는 충청도 사람들의 성격을 은근히 비꼰 일면이 있다.

사자성어 탄생의 역사를 보면 매우 오래 됨을 알 수 있다. 고대 중국 진한(秦漢)시기 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당, 송, 원, 명, 청대에도 신조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어(漢語)에는 지금 쓰는 대화에도 사자성어가 많다.

고래로 동양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사자성어는 삼국시대 유비와 관련된 글들이다. '수어지교(水魚之交)'는 유비가 재사 제갈량을 만난 기쁨에서 유래 된 명구다. 물과 고기는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이란 뜻으로 제후와 신하의 돈독함을 비유한 것이다. 많은 제후, 선비들이 휘호의 소재로 삼았다.

또 유비가 제갈량의 집을 세 번 찾아갔다는 고사를 담은 '삼고초려(三顧草廬)'도 황제나 제후들에게 인기 있었던 글이다. 원 황제는 한족(漢族)에 대한 융화책으로 삼고초려 그림을 담은 큰 단지(大罐)를 많이 만들어 제후들에게 하사하기도 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毅宗)은 '비례부동(非禮不動)'이란 글씨를 써 신하들에게 하사했는데 이는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는다'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조선 중기 사신으로 연경에 갔던 민정중이 얻어와 친구인 송시열에 전했으며 괴산 화양동 암벽에 각자해 의리(義理)의 거울로 삼았다.

청나라 황제 중에서 고문화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건륭(乾隆)황제는 '만고유방(萬古流芳)'이라는 사자성어를 즐겨 썼다. 이 글은 '세상의 이름난 것은 천추만대에 빛이 난다'는 뜻이다.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친황다오(秦皇島)시의 맹강녀(孟姜女) 사당 안에 걸려있는 있는 건륭황제의 금으로 쓴 현판은 지금도 중국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조선 임금들도 정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글귀를 써 중신과 수령들에게 내려주곤 했다. 정조는 특별히 농사를 권장하는 윤음(綸音-국왕이 국민에게 내리는 훈유 또는 문서) 적어 한해 농사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는 기록이 있다.

새해가 되니 사자성어가 쏟아지고 있다. 교수들이 선정한 올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글이다. 순자(苟子)의 왕제(王制)편에 나오며 '물이 배를 뒤집어엎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바꿔도 된다는 맹자의 역성혁명론과 같은 뜻이다.

이시종 지사는 신년 사자성어로 '비천도해(飛天渡海)'를 선정했다. '비천도해는 미래로 세계로 더 높이 더 멀리 전진하자'는 뜻이다. 이 글은 중국 성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지사는 충북비약을 위한 의지를 담았다고 해석한다.

대선주자들의 신년 사자성어 가운데는 '산하재조' '마부위침' 혁고정신' '불파불립'이란 글도 등장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탄핵 재판을 받고 있는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다. 나라를 개조하고, 도끼를 갈며, 깨부수고, 고친다는 주로 혁명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새해 걱정은 두 개의 민심으로 갈린 대한민국의 앞날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부작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또 사드배치에 따른 중국과의 갈등,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의 국제 정세, 침체 된 경제도 먹구름이다.

그런데 대부분 대선주자들의 행태를 보면 권력의지에만 집착, 나라의 미래나 국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발표한 올 사자성어마저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없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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