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현실의 거리

2017.02.02 17:25:55

김희식

시인·충북문화재단 기획운영팀장

요즘같이 문화예술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왕성했던 시기도 드물다. 탄핵정국과 맞물려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고 문화예술에 대한 정치적 검열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문화예술에 대한 농단을 자행한 현 정권의 천박한 문화예술 인식은 문화예술의 가치에 대한 존중보다는 문화예술을 수단화하는 데 모든 것을 주력했으며 그 것을 문화융성의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이에 따라 예술·예술가 지원은 개별화 되었으며 예술이 아닌 문화산업에 그 방점을 찍게 된다. 이제 예술은 개별화되고 상업적 기획물로 존재하게 된다. 이러할 때 우리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다시하게 된다.

최근 '표현의 자유를 향한 예술가들의 풍자연대'가 국회의사당 1층 로비에서 전시한 '곧,buy! 展'에 출품된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물론 이 전시 주체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전시의 주제는 풍자이다. 예술에 있어 패러디는 오랜 기간을 거치며 대중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예술적 소통방법으로 널리 쓰여 왔다. 이것은 사회의 진부한 권위와 가치의 경직성을 해체하고 폭로하는 예술의 근본적인 책무 중의 하나이며 이미 고전에서 동화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이는 수법인 것이다.

이번 전시된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의 문제시 되는 부분은 대통령에 대한 모욕적 표현이라는 점과 여성성에 대한 폭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세월호 7시간 의혹을 그린 폭로적 패러디가 일부 정치권과 극우보수주의자들에게는 불쾌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예술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또한 작품의 완성도에 따라 그 작품의 가치가 좌우될 수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며 예술을 통한 정치적 표현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군다나 참 나쁜 정치인인 대통령을 패러디의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그것이 해학과 풍자를 넘어서 과도한 표현이 이루어진 것일지라도 일반사람들과는 별개의 개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이 여성성에 대한 남성적 폭력에 의거했다는 점이다. 이는 매우 조심스러운 문제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성녀의 상징인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에 매춘부를 그린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가 겹쳐지고 그 안에 국정농단의 절대 권력이 겹쳐져 억압받고 힘없고 권력에 농단당하는 국민들의 절망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중층적 의미를 이해 못하고 단지 여성의 나체를 표현했다고 해서 여성혐오나 여성성 훼손이라고 하는 것은 예술의 시대에 대한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 패러디로서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 획일적 사고에 기인한 것이다.

예술의 본질은 낯설게 하기에 있다. 또한 예술의 모든 작품은 시대적인 것들이 투영되어 있다. 우리가 보는 아름다움이 더럽고 추잡한 부분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 못하고 잘 그려진 그림이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은 예술을 깊이 사유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우리 사회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탄압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 예술가의 저항이 쉽사리 인정되지 않는 이중적 인식이 상존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 전시는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예술가의 비판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는가하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더러운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는 시대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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