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은 40일이 아니라 20년을 살 수 있다

2017.02.06 14:25:31

변혜정

충북도 여성정책관

나는 닭고기를 먹지 않는다. 어린 시절 닭과의 추억 때문이다. 텃밭에서 넘어 진 나를 쪼아대었던 어미 닭의 몸짓, 어미 몰래 달걀을 훔쳤을 때의 들뜬 호기심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같이 놀았던 닭이 삼계탕으로 둔갑했을 때의 그 충격 때문인지 닭고기를 보면 아직도 가슴이 답답하다. 다른 종류의 고기들도 소화가 안 된다는 이유로 잘 먹지 않는다.

엄마는 건강을 위해 고기를 먹어야 한다며 거의 매일 고기를 드신다. 닭, 오리, 돼지, 소의 살점을 돌아가며 잡수시는 엄마를 보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사골 국을 끼고 사셨던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고기가 귀했던 그 시절을 아쉬워해서일까 아니면 종편의 노인건강프로그램 덕분일까· 식사 때마다 고기반찬을 권하는 엄마를 못 본 척하다가 '효도'라는 명분으로 좋은 고기를 사다드리려고 애쓴다.

그런데 요즘 이것마저도 힘들다. '자신이 죽일 수 없는 것은 먹지 않는' 거의 채식을 하는 딸 때문이다. 할머니의 식습관에 간섭하지 말라고 거의 윽박지르는 나에게 딸은 냉소적이다. 먹는 음식이 다르니 같이 밥을 먹는 일이 드물고 그러다보니 대화도 어렵다. 밥 먹으면서 소통한다는 음식공동체라는 말이 이래서 나왔나 보다.

결국 딸은, 이번 명절에 농장이 아니라 공장처럼 가축을 기르는 '공장 축산'의 문제를 들고 나왔다. 40일간의 밀집사육 등의 방식으로 대량생산된 닭고기를 값싸게 대량 소비하는 우리의 식생활을 비판했다. 치킨을 먹고 싶다면 닭에게 정말 감사하면서 조금씩만 먹으라고 충고했다.

순간 난 찔끔했다. 회의 때마다 언급되는 AI 조류 인풀루엔자의 문제를 너무 잘 알고 있음에도 2천만 마리 이상의 가금류가 생매장되는 현실을 끔찍해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국가재원 중 살처분 보상비만 2천 600백 억 원이 추정된다는 기사를 읽으면서도 마냥 속상할 뿐 근본적인 대책을 찾지 않았다. 너무도 불편한 진실이라서 관계의 편안함을 위해 무관심을 택한 것이리라.

앤드류 롤러(2015)는 <치킨로드>라는 책에서, 게르만의 무덤에서 일본의 사원에 이르기까지, 닭은 1세기 초에 아시아와 유럽 전역에서 빛, 진리, 부활을 알리는 상징이었으며 고대 이집트에서 희귀하고 신분 높은 새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매년 전 세계에서 1억 톤의 닭고기와 1조 개 이상의 달걀이 소비되는 현재, 닭은 다양한 분야에서 '고기'로서 인류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풀이 아니라 사료와 항생제와 촉진제만 먹으면서! 그 결과 오염된 수로, 노동자에게 위험한 환경, 식품 안전에 관한 우려, 형편없는 동물 복지 문제 등이 활기찬 국제무역의 그림자 속에 대부분 은폐되어 있다고 롤러는 비판한다.

원래 시골마을 사람들이 키운 짐승은 모두 풀을 먹고 자랐다. 잡식동물이라 알고 있는 돼지도 실상 초식동물이다. 풀을 먹고 자란 짐승 살점을 '고기'라 하지만, 막상 집짐승 살점이 풀로 이루어졌다는 롤러의 통찰은, 생각 없이 고기를 즐기는 당신을 놀라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일반적인 산란장을 "여긴 닭 정신병원입니다"라며 공장축산을 비판했던 어떤 학자의 우려처럼 결국 우리는 2천 만 마리의 가금류가 생매장되는 현실과 만났다. 정성스럽게 가꿔 고마운 마음으로 먹는 밥 대신 오직 돈으로 재거나 따지는 오늘 날 산업사회에서 편리한 먹거리를 선택해서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에서 가장 이익을 보는 자는 누구일까· 언제까지 누구를 위하여,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은폐할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20년은 아니더라도 40일간 키운 닭을 오늘 먹을 계획이 있다면 당장 재고하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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