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2017.03.20 13:46:52

연순동

청주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한국전쟁 이후 1954년에 박시춘 작곡 가수 백설희의 노래로 우리에게 널리 날려진 "봄날은 간다" 대중가요가 있다. 이 노래만 들으면 눈물이 나서 견딜 수 없는 나에게 또 이 노래가 부딪혀 왔다. 매주 수요일 난타를 배우러 동사무소 무료 교육장에 갔는데 칠판에 이 가사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

나는 금새 눈물이 핑돌았다. 관광 길에 나서면 누구나 한 마디씩 노래를 하는데 60세에 세상을 떠난 한 분이 이 노래를 구성지게 아주 잘 불렀었기 때문이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그 분의 마지막 입관 예배를 보러 갔었는데 평상시보다 더 고운 화장에 연분홍 치마를 입고 편안히 누워 계셨던 것이다. 정말 봄날처럼 가버리셨다. 2절 마지막 소절은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이고 3절 마지막 소절은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이다. 이 외에도 이 노래 속에는 아름다운 단어가 참 많다. 꽃편지, 청노새, 역마차표 등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단어들이다. 별이 뜨면 같이 웃고 별이 지면 같이 울던 친구들이 하나 둘 죽어간다. 봄날 가듯이 죽어간다. 인천에 사는 친구는 남편 죽고 얼마 안 가 친구마저 죽었다. 그 친구가 죽었을 때 나는 다른 친구에게 부의금을 부탁했었다. 그런데 그만 올봄에 그 친구 잘 있느냐고 물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부의금만 부탁하고 교통비도 안주더니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핀잔을 들었다.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치매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서둘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의사는 다 잊어 버리고 나만을 위해 살라고 한다. 눈물을 흘리며 안간 힘을 써보지만 어떻게 나만을 위해 살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살든 봄날은 가고 있다. 연분홍 치마를 입은 채로 화장터로 들어간 그 여인은 생전에 정말 아름답게 살았다. 의사 아들, 딸 둘은 교사, 공무원이다. 그보다 더 훌륭한 것은 생전에 그가 보인 남편에 대한 애정이었다. 교회 장로이던 남편이 IMF를 맞았을 때 너무 속상하여 담배를 핀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그 순간 아내는 지붕 위에 올라가 고추를 널고 있었는데 잠시 틈새에 집 뒷벽에 기대 담배를 피는 남편을 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화내지 않고 그냥 마냥 웃었단다. 그 웃음소리에 무안한 남편은 그 이후 담배를 피지 않았다는 사연이 있다. 그 여인은 그렇게 봄날처럼 가버렸다.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그냥 읊어내는 말이 아니다. 내 이웃이 한 명 한 명 죽어간다. 모두 아름답게 꽃처럼 죽어간다. 장례식을 다녀올 때마다 마음 속에 다짐하는 한 가지는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자는 것이 다. 봄날만 속절없이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도 짧다. 이렇게 허무한 삶을 살면서 우리가 신중하게 해야 할 것은 언어 사용이다. 솔밭공원으로 소풍을 갔다가 선배를 만났다. 교직 5년만에 부장이 되었다는 내 소식을 들은 그 선배가 불쑥 한 마디 했다. " 연순동은 하나님이 키우시는구나." 그 말 한 마디를 붙잡고 교직 40년을 버티어 왔다. 요즈음 직장생활이 힘들 때 버티기를 잘 해야 한다고 한다. 힘들게 버티기보다는 노랫 가사를 흥얼거리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고난은 곧 사라질 것이다. 얄궂게 가버리는 봄처럼 말이다. 무심히 흘려 버린 말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인생은 봄날처럼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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