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독백

최종웅의 세상타령

2017.03.21 18:17:02

최종웅

소설가

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살자니 치욕이고, 말자니 비겁하다. 어떻게 이 문을 열고 나가며, 무슨 낯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나. 어디 낯선 곳으로 도망이라도 칠까? 문제는 얼굴이 팔렸다는 것이다.

내 얼굴을 몰라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외로 나갈까?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짓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잃고 난 후 왜 그렇게 술에 빠져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도 나 같은 심정이었을까· 아마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었는지도 모른다.

벌떡 일어나 양주 몇 잔을 마신다. 몇 잔술로는 어림도 없다. 술을 들이켜듯 입에 붓는다. 역시 술은 위대하다.

이런 일을 내가 처음 겪는 게 아니다. 철석같이 믿는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 절간으로 쫓겨난 사람도 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감옥까지 갔다. 자신을 귀향 보낸 친구와 나란히 법정에 서서 판결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난 경우가 다르다. 난 어리석은 죄뿐이 없다. 단 한 푼도 사익을 취한 일은 없다. 단지 측근관리를 잘못했을 뿐이다. 자식도 제 마음대로 못하는 세상에 어떻게 남이 하는 짓을 다 책임질 수 있나.

어떻게 떡을 만들면서 고물을 묻히지 않을 수 있나? 그 유명한 말이 떠오른다. 수전노 샤일록에게 빚을 받아가려면 피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살 한 근만 똑 떼어가라는 판결이다.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누구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 거리에서 호떡 장사를 하는 사람도 나처럼 작정하고 털면 견뎌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도로교통법 식품위생법 등 적어도 네댓 가지 법에 걸릴 것이다.

다들 감추고 사는 게 세상살이 아닌가. 그런 모순을 고치기 위해서 정치가 존재하는 게 아닌가. 이제 아무 욕심도 없다, 그저 마음 편히 살고 싶다. 여느 아낙네처럼 남편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때 날 지켜줄 힘센 남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가 들었으니 남자가 있더라도 기운이 빠질 때다. 그렇다! 장독 같은 아들이 서넛 있으면 좋겠다.

"엄마 아무 걱정 마세요. 저희들만 믿으세요."

이렇게 위로해 주는 자식이 그립다.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얼근히 술에 취하자 눈에 어른거리는 남자가 있다. 퇴임한 후 몇 차례 불려 다니더니 자살한 남자다. 얼마나 속이 탔으면 그렇게 했을까?

차라리 나도 그렇게 할까· 눈물이 흐른다. 까짓 죽은 뒤에 누가 뭐라고 하든 무슨 상관이랴. 그럴 수는 없다. 어머니가 총탄에 가셨는데 아버지도 그렇게 가셨다. 나까지 그렇게 간다면 너무 슬픈 일이다.

얼핏 한 노인 모습이 떠오른다. 야반도주라는 말도 생각난다. 어느 먼 외국에 가서 이름도 성도 모르는 여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건 비겁한 짓이다. 대머리까진 남자의 당당한 말이 귓전을 울린다.

"무슨 말을 해도 좋은데 제발 외국에 나가 살라는 말만 하지 말아 주십시오."

라는 말이 가슴을 적신다. 새벽에 잠시 눈을 붙였는데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였다.

"넌 어느 대통령보다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제왕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이 말을 듣고부터는 마음이 편해졌다. 누구나 다 태어난 목적이 있는 법이다.

나라를 건국한 대통령, 가난을 떨쳐버린 대통령, 장기집권을 청산한 대통령, 직선제를 실천한 대통령~~. 난 악역을 담당했을 뿐이다. 악역을 담당한 사람이 있어야 좋은 역할이 빛을 보는 법이다.

언제고 진실은 밝혀질 테고, 역사는 날 제왕적 대통령 문화를 청산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평가해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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