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향연 - 어머니의 텃밭

2017.04.13 17:53:12

여느 시골풍경이 다 그러하듯이 내 고향 시골집 뒤뜰에도 조그만 텃밭이 있다. 이 텃밭에는 식물이 자랄 수 없는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채소가 항상 자라고 있다. 겨울은 지난 해 늦가을에 파종해 놓은 마늘이 땅속에서 싹 틔울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일년 내내 밭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어머니께서는 그 조그만 텃밭을 누구보다 잘 활용하셨다. 1년 동안 파종계획을 세우셨는지 절기에 따라 필요한 채소 종류를 정확하고도 적당한 양으로 심고 가꾸시었다.

무엇을 얼마만금 언제 파종할지는 전적으로 어머니가 결정하셨다. 거름 주고 물주고 가꾸는 일은 어머니 지휘하에 육남매 자식들의 역할이었다. 파종할 때 옹골찬 씨앗을 심지 않고 가뭄에 물주기를 게을리 하고, 잡초제거를 제때 해주지 않으면 훈계하고 엄하게 꾸짖으셨다.

잘 가꾼 텃밭의 채소는 아침저녁으로 매일 한 번씩은 들러 수확하였다. 그때마다 싱싱한 채소는 맛난 반찬으로 식구들을 만족시켰다. 지금이야 텃밭에 채소를 가꾸는 것을 취미삼아 하지만 내 어릴 적 텃밭은 어머니에게는 생계이었을 것이다.

이런 텃밭이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선조 때부터 살아오던 낡은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게 되었다.

자식들은 모두가 건축가인양 나름 아이디어를 가지고 논의를 하였다. 그중 뒤뜰 텃밭 쪽으로 집을 짓고 앞마당을 넓게 쓰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 계획을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는 "텃밭은 지금 그대로 그냥 두어라"하시고 아무런 말씀도 없이 상기된 얼굴을 하시고 조용히 자리를 피하셨다. 한참 새집 구상에 들떠있던 형제들은 어머니의 말씀에 깊은 침묵이 흘렀다. 자식들이 장성한 후론 평상시는 당신 의견은 좀처럼 표현하지 않으시다 오늘은 완고하게 반대를 하셨다.

뭔가 잘못 되었구나 싶어 아버지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텃밭은 과거에는 새색시 시절 고단한 시집살이에 친정생각나면 찾아가서 위로를 받던 곳이다. 맛난 반찬으로 가족들 건강유지를 시켜 주는 근원지이었고, 부족한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는 곳이었다. 노년에는 자식들 모두 도회로 보내고 조그만 텃밭에서 소일삼아 매일 직장에 출근하듯이 찾는 곳이란다. 그곳에서 과거도 회상하고 위로도 받는 그런 귀한 장소다."

아버지 말씀을 듣고 나니 자식들은 마당 넓은 집만 생각하고 가끔 오는 자식들 위주로 판단했고, 새로 지은 고향 집에서 노년을 보내야 하는 어머니는 안중에도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텃밭이 없어지는 것보다 자식들이 당신을 배려해 주지 않는 것에 더 서운해 하셨을 게다. 이를 어찌하나. 텃밭이야 남겨두고 앞마당을 좀 작게 사용하면 되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서운하게 해드린 게 죄만스럽다. 자식들이 어머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한 깨달은 계기가 되었다.

결국 텃밭은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어머니께서는 조그만 텃밭을 친구삼아 더 알뜰히 가꾸시고, 자식들이 고향방문 할 때면 어김없이 텃밭의 싱싱한 채소로 밥상을 차려주셨다. 이게 어머니 밥상이구나. 이후로 자식들은 고향집에 가면 너나 할 것 없이 텃밭에 인사라도 하듯 꼭 들러보는 장소가 되었다.

한동안은 텃밭이 제 역할을 넘칠 정도로 충분히 해내었다. 그러나 수년 전 어머니께서 낙상사고를 당하시고 오랫동안 병원생활을 하시면서 텃밭의 풍경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빠르게 자라는 잡초는 누가보아도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했다. 어머니의 친구 같은 텃밭이 돌보는 사람이 없어 무성한 잡초로 변해가는 것을 보시면서 텃밭과 당신의 신세를 동일시하게 여기셨다. 텃밭을 바라보는 불편한 어머니의 마음도 살피고, 철따라 고향방문도 자주 하겠다는 굳은 마음을 합하여 대추나무를 심었다. 건강이 회복되면 예전처럼 쑥갓도 심고 마늘도 심을 수 있게 그냥 두는 게 좋겠다는 어머니 말씀을 이번엔 따르지 않았다. 회복이 어렵다는 의사의 진단을 어머니께서는 알지 못하신다.

지난해에는 게으르기도 하고 이런 저런 여러 가지의 일로 대추나무를 돌보지 않아 어머니께 또 다른 걱정을 드렸다. 올해는 텃밭에 대한 어머니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정성을 다해 가꾸어 잘 익은 대추만큼 어머니 건강도 좋아지셨으면 한다. 아니 그보다 올봄은 어머니께서 회복하시어 예전처럼 자식에게 맛난 '어머니 밥상'을 차려줄 수 있으셨으면 …….

조준호 프로필

푸른솔문인협회회원

루터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 전공

공기업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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