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혼여행 소감

2017.06.18 13:12:58

김병규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을 인천 가르멜 수도원으로 다녀왔다. 대학 때 방학 마다 들렀던 기억을 되새길 겸, 빙점(氷点)을 쓴 미우라 아야꼬가 자전적 소설 '이 질그릇에도'에서 한 것처럼 첫날밤을 좀 더 의미 있게 지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말없이 따라주어 이해심 많은 줄 알았던 마누하님이 기회 있을 때마다 "신혼여행을 수도원으로 가다니, 남들은 외국으로도 잘 가던데..." 등등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그것도 조용히 이야기 하신다. 신혼여행 의미 있게 다녀오려다 대신에 보상 여행을 참으로 많이 했지만 여행은 여행일 뿐 신혼여행 못 간 아쉬움은 풀리지 않는다니 할 말이 없다. 회혼례라면 모를까 단지 신혼여행 가려고 다시 결혼할 수도 없고 말이다.

하루는 집사람이 하와이 여행이 자기의 버킷리스트라고 넌지시 말한다. 패키지 상품을 찾아보니 대개 전일제 자유프로그램으로 추진되어 항공료 외에 추가 경비가 부담스럽다. 그러던 중에 딸아이가 하와이 리조트 무료 숙박권이 있으니 다녀오란다. 집사람은 그말 떨어지기 무섭게 반색하며 여행 준비를 한다. 얼마나 좋았으면 장시간 비행에도 힘들긴 커녕 마냥 희희낙락이다. 전 같으면 허리가 쑤신다, 다리가 저리다 하여 굳어졌다는 목과 허리에 종아리까지 주물러 주느라 자못 분주했을 텐데 이번에는 전혀 다르다. 바라던 여행이라 그런가보다.

공항 주변에서 차를 렌트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무스탕 오픈카를 렌트하려는데 비용 차이가 너무 크다. 하는 수 없이 폼 낼 마음을 접고 저렴한 차를 빌렸다. 여직원이 한국어 내비를 주어 오직 내비 하나 믿고 하와이 오하우 주 전역을 누비고 다녔다. 이따금씩 내 입에서 평소 안 쓰던 '이거 환장하겠네!'라는 말은 나왔지만 익숙지 않은 방향 지시 탓일 뿐, 보석 같은 풍광을 보는 기쁨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와이는 세계인이 살고 싶어 하는 0순위의 나라라 하더니 지상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할 지경으로 멋진 경치라 낮이건 밤이건 다 아름답다.

꿈같은 여행을 마치고 집사람의 콧소리 섞인 말을 들으며 귀국 길에 길에 오르는데 아뿔싸 내비가 말썽이다. 이제껏 문제없었는데 하필 마지막 날 시간 맞춰 공항 가는 길에 GPS가 꺼졌다는 사인이 자꾸 뜬다. 아무리 별 방법을 써도 안 된다. 이러다간 비행기 놓치게 생겼기에 속에선 진땀이 흐른다. 미국이란 곳이 갓길에 차를 대기 어렵다. 그래도 급한 김에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서 패대기쳐 버리고 싶은 내비를 주물럭거리는데 무심한 시간만 지나가는 차처럼 급하게 지나간다. 집사람이 앞에 경찰차가 서 있다 한다. 그 차는 가고 이번에는 다른 순찰차가 뒤꽁무니에 바싹 들이대고 있다. 하는 수 없어 차문을 열고 나가서 그 경찰한테 내비에 문제가 있어 그러니 내 차의 내비를 손볼 수 있냐고 물으니 뜨악한 표정이다. 하기야 경찰에게 내비를 물은 내가 잘못이지. 이번에는 공항 가는 길을 물었다. 자! 급해서 묻긴 했는데 설명을 어찌 알아듣겠는가. 지명도 모르는데 어디서 좌회전하고 우회전하여 니미츠 고속도로를 타라니 영 모르겠다. 아무튼 급한 처지를 설명하니 경찰은 떠났고, 차로 오면서 컴퓨터 다운되었을 때처럼 해 보자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껐다가 켜니 거짓말처럼 작동된다. 역쉬 '기계는 기계로다.' 왜 진작 이렇게 할 생각을 진작 못했는가 하고 뒤통수를 치며 아슬아슬하게나마 공항에 도착하니 안도의 숨이 절로 난다. 그야말로 다행이란 생각뿐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집사람이 손을 꼭 잡아주며 '여보! 고생많았수!'하니 예쁘다. 그러면서 신혼여행은 아니었어도 이번 구혼여행으로 충분하다 하니 오랜 체증이 뚫린 듯 개운하고, 무지 어려운 숙제를 해낸 것처럼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고진감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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