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을 피한다는 교장

2017.07.02 14:17:28

김병규

상당고 교장·교육학 박사

전국 교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이들이 공부는커녕 보기 싫은 짓만 한다고 이구동성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 분이 "그래서 난 요즘 학생 만나는 것을 피하고 있어!"라 하는 것이 아닌가. 수석교사 면접할 때 들었던 '학생이 없으면 선생도 좋은 직업'이라는 말보다 더 충격적이다. '그 좋은 시절 교장 한번 못 하고, 이 좋은 시절 선생 도 못한다'는 말도, '누가 시켜서 했나· 지가 좋아서 교장 했으면서' 힘들다느냐는 말도 듣긴 했지만 교장으로 마땅히 직면해야 할 학생을 피한다니·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틈날 때마다 한국 교육을 칭찬하였고, 필자가 미국 연수에서 지역 교육청을 방문하자 교육장이 '우리가 가서 배워야 할 나라에서 오셨으니 어떻게 미국 교육 소개를 하겠는가' 할 정도인데 정작 한국 교장은 교육하기 힘들다고 한다. 이참에 우리의 학교 모습을 들여다보자. 북한의 김정은이 못 내려오는 이유는 중2병이 무서워란다. 우리 학교에서 성적이 상위권 학생들 거개는 장래 희망이 교사인데 중등보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원하고 있다. 이유를 물으니 고등학생들이 말을 안 들어 교사하기 힘들기 때문이라나. 모 대학과의 간담회에서 총장님이 교수들의 애환을 말하며, 강의 시간에 아예 자는 학생이 있으니 고등학교에서 수업의 기본예절 교육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중학교 교장들에게 수업 시간에 졸지 않도록 교육을 시켜서 올려 보내라고 부탁한다니 좌중이 웃음 바다였다. 블랙코미디이지만 이게 현실이다. 공부 안 해도 대학 충분히 간다며 얼굴 화장에 공을 들이고, 수업 시간에 취침하여 비축한 체력으로 밤새워 노는 아이들. 철봉에 매달리자마자 똑 떨어지는 남학생들, 공부에 도통 의욕이 없는 학생에게 마지막 대안으로 위탁교육을 안내하면 조는 시간 빼앗기므로 가지 않겠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 태반은 운동시간에도 땀내기 싫어하고, 입만 열면 상스런 욕을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욕하는 줄도 모른다.

학부모들은 어떤가. 중·고등학교에서처럼 대학생활까지 간섭하려고 학교 주변에 방을 얻기도 한다. 심지어 군대 간 아들이 행군할 때 간식이라도 주고자 원룸을 빌리는 어머님도 있다. 북한이 내려오지 못하는 이유는 이제 중2병이 아니라 대한민국 군인의 어머님 때문이겠다. 아들은 5분대기조에 뛰어 나오다가 선크림 바르려 내무반으로 다시 뛰어 들어가고, 어머니는 철조망 밖에서 막사 내부를 쌍안경으로 감시한다· 이거야 완전 희극이다. 이러니 지뢰제거하려는 부대장이 부모님의 사전 허락을 득하는 촌극도 발생하는 거다.

날이 갈수록 해가 지날수록 학부모의 자식 사랑은 거세어진다. 예전 지식인들은 자식 사랑을 절제하여 표현했는데 지금은 내 자녀 이기주의를 확연히 드러내고도 더 못해주어 미안하단다.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것들은 무지 많은데 어디부터 풀어야 된담. 위정자는 국민의 표에 눈이 가려 성급한 교육공약을 내걸고, 민선 자치단체장들은 임기 중에 실적을 올려야 하니 교육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염두에도 없다. 이 와중에 교장의 권한은 갈수록 사라지고 막중한 책임만 남는다. 게다가 일하는 보람도 안 보이니 학생을 피한다는 말이 일리는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예쁘다'고 침묵하는 다수는 선량하다. 묵묵히 공부하고 시간을 아껴 자기 계발에 공을 들인다. 사실 학생들이 알아서 잘 하면 선생의 존재 가치도 의미가 없다. 지도해야 할 학생이 있어야 선생이 필요한 거다. 작년에 왕따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아이가 선생님 도움으로 지금은 학교생활 잘 하고 있다 말할 때, 좋은 선생님들 덕분에 자기 성적으로 가기 어려운 대학에 진학하여 감사드린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 이런데 어찌 학생을 피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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