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지명에 숨어 있는 '멍에'의 의미

2017.07.12 13:44:18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가산리(駕山里)는 본래 청주군 남일상면의 지역으로서 산이 멍에처럼 생겼다하여 멍에미라 하였는데 멍에미가 줄어져서 멍어미, 머미라 부르다가 한자로 가산(駕山)이라 표기하고 있다.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의 멍에골은 하관평 서북쪽 2㎞ 지점에 있는데 소의 멍에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지명에 '멍에'가 쓰이는 곳이 많이 있는데 과연 소의 멍에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일까· 국어 사전에 찾아보면 '멍에'란 '쟁기질 할 때에 소 목덜미에 얹어서 사용하는 굽은 나무, 마소가 달구지나 쟁기를 끌 때 목에 거는 나무'라 설명하고 있는데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의미로도 쓰이므로 좋은 이미지를 주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멍에는 지역별로 '멍에, 멍아, 멍이, 몽에, 멍지, 멍'들로 쓰이는데 '소'가 결합되어 '소몽에, 세멍에, 쉐멍에' 들로 쓰이기도 한다. 가수 김수희의 히트곡 중에 '멍에'라는 노래가 있다.

'사랑의 기로에 서서/ 슬픔을 갖지 말아요/ 어차피 헤어져야 할 거면/ 미련을 두지 말아요……/ 아무리 아름다운 추억도/ 괴로운 이야기로/ 사랑의 상처를 남기네……/그래도 내게는 / 소중했던 그날들이 / 한동안 떠나지 않으리'

라는 노랫말 속에 보면 애절한 이별과 마음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별의 상처를 한마디로 '멍에'라 표현하여 노래 제목으로 삼고 있는데 이 말은 노랫말 내용 전체로 보아 핵심을 콕 집어 지칭하는 말로서 정말로 기가 막힌 표현이 아닌가·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농기계가 나오면서 소나 말이 멍에를 벗게 되었지만 그동안 우리 조상들이 수천년 동안을 농사를 짓기 위하여 소를 부리면서 멍에를 씌울 때마다 미안함과 측은함을 느꼈을 것을 생각하니 닳고 닳아 빤질빤질해진 멍에 속에 조상들의 피와 땀이 어리고, 희로애락의 감정과 삶의 의욕, 희망이 녹아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런데 멍에는 생김새가 일자형이거나 또는 약간 굽은 형태여서 쉽게 벗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사용할 때 왜 소의 목에 단단히 고정시키지 않을까하는 궁금증이 항상 있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조상들의 심오한 지혜가 숨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험한 길에서 달구지가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질 경우 멍에가 저절로 벗겨져서 소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니 동물을 사람 대하듯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그렇다면 지명에 쓰인 '멍에'는 지형이 높은 산이나 고개가 아니라 멍에의 생김처럼 약간 솟은 언덕이나 낮은 고개를 가리키는 의미일까· 생각해보면 단순하게 지형의 모양을 나타내는 의미로만 쓰였다고 보기에는 지명으로서의 유연성이 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짐을 지고 힘들게 넘어다니는 고갯길을 소가 쟁기나 짐을 실은 달구지를 끌 때의 힘들고 어려움을 멍에와 연관지어 지명으로 삼았다고 하면 그 연관성이 더욱 긴밀하면서도 심오하고 문학적인 의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른 지역의 지명을 살펴보면 멍에라는 지명이 단순히 모양만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라기보다는 다른 어원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또 다른 추측이 가능해진다.

괴산군 소수면 몽촌리에는 멍뎅이라 불리는 들판이 있는데, 들판이 넓어서 '멍석들'이라 의미로 해석하고 한자로는 명덕(明德)이라 표기하고 있다. 단양군 단성면 벌천리에는 멍기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모녀재. 모녀티. 독기재, 독여티, 머너티, 멍어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단양군 어상천면 석교리의 '멍앗'은 한자로 '가전동(駕田洞)'으로 표기하여 '멍앗'이 원래는 '멍에밭'이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그런데 보은군 속리산면 삼가리의 '멍어목'을 보면 '멍에'와 '목'과의 연관성을 나타내고 있어, '멍에'는 지형에서 '목'의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볼 수가 있다.

'목'이란 척추동물의 '몸통을 잇는 잘록한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서 지형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말일 뿐만 아니라 언어학적으로도 '목 + ㆁㅔ(명사형 접미사) < 멍에'의 변이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타당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멍에미'라는 지명은 산줄기를 잇는 잘록한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 지명으로서 유연성이 매우 높아지고 마소의 목에 지는 멍에도 같은 의미로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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