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충실한 여름나기

2017.07.24 13:12:13

연순동

청주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그동안 전천후로 살았다. 행사를 진행하다가 비가 오면 그 나름대로 탄력적 운영을 하면 모든 과정이 무리 없이 끝날 수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 달라졌다. 아침부터 33도를 내는 습한 아열대 기후에 두 손 다 들었다. 줄줄 흘러내리는 땀으로 바닥 청소를 해도 될 성 싶다.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가 생각난다. 의관을 정제하고 앉아 있으려니 큰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더위를 견디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두보의 시를 읽으며 뭐 그리 발광인가 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서 시를 다시 들여다보니 두보가 미칠 지경에 이른 것은 단순히 더위 때문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시 일부이다.

부서하급내상잉(簿書何急來相仍) 장부와 문서마저 이다지도 급히 몰려 서로 잇따르나.

더위보다 '쓸데없는 문서와 일들'로 인해 미칠 지경이었다는 말이었다. 일이 밀려오니 더위가 견디기 힘든 것이다. 청주시는 수해 복구 사업에 여름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2015년 '서울대 공대 26명의 석학이 던지는 한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제언'이라는 부제를 달고 '축적의 길'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지난 20년간 신산업이 없는 우리나라 산업을 냉장고만 파먹는 사람이라고 지적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가슴이 찔렸다. 학생들의 잠재력을 키워주지 못하고 정답을 찾아내는 기술 훈련을 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었다. 흥미롭게 수업하지 못하면서 끈기 없음을 지적했었다. 빨리 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기한을 주면서 창의력이 없다고 핀잔을 주었다. 학사 일정에 지장만 없으면 학생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는 전에 하던 문서를 뒤적이다가 진일보하여 우수학교 벤치마킹을 했다. 물론 이렇게 생활해왔기 때문에 시행착오는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아이템이 없었다. 혁신적이지 못했고 확고한 교육철학이 없었다. 모든 학생에게 과녁을 맞추라고 중심점을 확실하게 표시해 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무척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하지 말고 학생 스스로 과녁판을 만들게 해주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후회를 해본다. 하나의 트랜드를 정해놓고 경쟁을 시켰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경쟁자였고 함께 평범해져 간 것이다.

200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시모무라 오사무박사는 해파리 박사이다. 해파리가 움직일 때 녹색 빛을 내는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 19년 동안 미국 서부 해안에서 하루종일 해파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동안 잡은 수가 85만 마리라고 한다. 그는 하루하루가 행복했고 질투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핸드폰 끄고 텔레비전도 없앤 후 자연현상에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헛된 소비만 하고 살아온 지난 날을 아까워하며 나에게 맞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글을 쓰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일이 내게는 적합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박사가 되려고 남의 논문을 베끼고 있었던 것이다.

가진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권력에 대한 욕망은 다 있다고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부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비판하고 불만을 많이 한다. 가진 사람은 자신의 조건과 환경을 개선하고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낸다.

오늘도 35도를 웃도는 날씨이다. 하지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이 글을 기고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흥미를 찾고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늘을 만들어주는 여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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