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밤섬

2017.07.26 13:28:32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지명에 많이 쓰인 '밤(栗)'에 대하여 생각하다 보면 지금은 세상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지만 서울의 여의도 앞에 있는 '밤섬'이라는 곳이 떠오른다. 밤섬이란 이름은 섬이 밤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지지만「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巧)」에는 율주(栗州) 또는 가산(駕山)이라 했으며 길이가 7리(里), 서울에서 10 리 되는 곳, 마포 남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국지명총람」에는 "순조 때까지는 뽕나무를 심었고 고려 때에는 죄인을 귀양 보내던 섬으로 이용되었으며 도선장으로 백사장을 건너 인천으로 가는 간로(間路)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1968년 폭파되어 사라지기 전까지 이곳에는 부군신을 모시는 사당을 만들어 17대를 살아온 62가구 443명이 살고 있었는데 대부분 어업과 도선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5백여 년 전부터 배를 만드는 기술자들이 이곳에 정착, 조선업에 종사하기도 했었다. 이곳 주민들은 마(馬)씨, 판(判)씨, 석(石)씨, 선(宣)씨 등 희성의 소유자들로 한강물을 그대로 마시며 거의 원시공동사회 체제 속에서 생활을 영위했다. 「대동지지」에 "밤섬은 서강 남쪽에 있는 한 섬인데 섬 전체가 모래로 되어있으며 주민들은 부유하고 매우 번창한 편이다"라 기술하고 있으며 「한경지략」에도 "마포 남쪽에 있는 밤섬은 약초 모종을 내고 뽕나무를 재배하는 곳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조선후기 순조 연간까지도 이곳에는 약초밭과 뽕나무밭이 계속 남아있었던 것 같다.

「용재총화」권 10에 "밤섬에는 많은 뽕나무를 심어서 해마다 누에 철이 되면 잎을 따서 누에를 쳤다. 옛날에 서울 장안에 일부 대감집에서만 누에를 쳤지만 지금에 와서는 대감집뿐 아니라 가난한 집에서도 누에를 치지 않는 집이 없기 때문에 뽕잎 값이 뛰어오르고 비싸서 뽕나무를 심어 이득을 보는 사람이 매우 많다"고 하였다.

일제시대에는 율도정(栗島町)이라 했고 해방 후에는 서강 서부동회에 속했었으나 서울시가 여의도를 개발하면서 한강하구를 넓혀 물길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1968년 2월10일 돌산으로 된 밤섬을 폭파함으로써 서호팔경(西湖八景) 중「율도명사(栗島明沙)」라 불렸던 밤섬의 강모래 벌판이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1960년대 들어 서울시가 여의도 개발 계획을 세우면서 여의도를 매립하려 할 즈음 1966년 서울의 대홍수로 물난리를 겪으면서 정부(건설부)에서는 서울시의 계획안에 대해 "여의도를 매립할 시 한강 흐름이 나빠지며, 대홍수에 대비할 수가 없다"며 제동을 걸었다. 서울시와 건설부는 협의 끝에 건설부의 주장대로 한강 폭을 넓혀 대홍수 시의 유수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밤섬을 폭파하여 없애기로 결정한 것이다. 또한 밤섬 폭파는 서울시의 바닥난 재정 상황에서 여의도 윤중제의 자재를 조달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이기도 했다. 바위섬이었던 밤섬은 폭파하는 즉시 석재로 사용할 수 있었고 남은 토사도 퍼다가 매립하는 데에 부어버렸다.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아예 여의도 공사 현장에 간이 막사를 짓고 이동식 시장실을 설치하여 공사를 지휘하였고 인부들이 3교대로 투입되어 불과 110일만에 여의도의 윤중제 공사가 완료되었다고 한다.

원주민은 마포구 창전동과 우산 산중턱으로 집단 이주하여 섬이 사라지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강물에 의하여 퇴적물이 쌓여 다시 섬이 생기고, 여기에 억새, 갯버들 등 친수식물이 자생하면서 1990년대에 들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도심 속의 '철새도래지'로 부각되자 1999년 8월 10일 서울시가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고시하여 특별 보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밤섬은 아주 특이한 섬이었던 같다. 「명조실록」11년 4월에 나타난 밤섬 주민의 생활상을 보면 이곳의 한강물이 워낙 깨끗하여 식수로 직접 마시며, 한양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외부로의 왕래가 뜸해 남의 이목을 덜 의식한 듯 섬주민의 생활방식이 대체로 자유 분방하여, 남녀가 서로 업고 업히고 정답게 강을 건너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아 동성동본이고 반상이고 따지지 않고 사는 모습이 당시 한양에서는 충분히 이야기거리가 됨직하다. 또한 이처럼 현실을 떠난 상상 속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도연명이 살았다는 이상향인 '율리(栗里)'를 떠올리게 함으로서 '밤섬(栗島)'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전국의 '밤-'계의 지명들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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