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리 '기성화센터'

2009.05.13 18:42:44

정해자

보은군 자원봉사센터 코디네이터

아랫도리가 다 삭아서 간신히 구실을 하고 있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친정아버지가 정갈하게 쓸어놓은 마당은 빗자루자국이 옅게 남아 있었다.

창고에서 무 서너 개, 감자, 양파를 꺼내 나오면서 자전거브레이크를 손에 땀이 나도록 쥐고서도 오금이 저리도록 겁을 먹고 내려왔던 언덕배기에서 옛 생각을 끄집어내 본다.

아버지가 장날에만 시장보라고 주는 만원을 가지고 장날저녁만 비린내를 풍기는 살림을 꾸려가며, 연탄화덕 빙 둘러 2남 2녀의 신발을 데워 신기고는 골목길을 내려가는 자식들의 뒷모습이 감춰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던 어머니가 우리에겐 있었다.

소리 나진 않지만 앙금처럼 무겁고 깊은 사랑 때문인지 부모 속 한 번 안 썩히고 아쉬운 소리 없이 밥벌이를 하고 있는 자식들. 그런게 부모에게 해드릴 수 있는 효도라 생각하고 산다.

아버지가게 주변으로 도장집 아저씨, 문방구아저씨, 연일정씨 아저씨, 모시저고리 아저씨들이 오랜 세월을 함께 하시더니 이제는 암으로 돌아가셨거나 투병하시는 분, 아들한테 물려주고 낚시하시는 분.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내년이면 여든이 되는 연세에도 아직 '기성화센터'의 문을 계속 열고 있다.

가게 문 열고 얼굴을 자주 들이밀지는 않지만 그래도 네거리 한 복판 샷시문이 잘 열려있는지 챙겨보는 것이 문안인사이다.

남들도 다 그런가· 내 부모는 세상 떠나지 않을 것이라 믿는 어리석음.

그래도 큰 병치레라고는 무릎관절만 아파서 병원 신세진 것 빼고는 평생을 골골 이 약 저 약 간식이 약인 줄 아시는 우리 아버지.

평생을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한 번 안하고 당신손발 움직이면서 고지식하게 여든을 맞는다.

그래도 오늘도 네거리 기성화센터의 문은 열리고 그 안에서 주인장 없는 틈이라도 생길라치면 터줏대감들이 구두수선 할 것도 맡아주고, 모자도 팔고 물건 값도 이것저것 알려주며 하나라도 팔아주려는 우리의 아버지들이 가득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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