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연

음성문인협회장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스치는 담배 연기에 인상을 찡그리며 멀찍이 떨어져서 집으로 들어갔다. 공동 현관문을 열고 몇 계단 내려가면 아파트 담 아래에 긴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실내에서의 흡연을 금하며 마련된 흡연 장소이다. 여기에 놓인 의자가 고맙게 여겨지기 시작한 건 2주 전쯤부터이다.

엄마의 손을 잡고 어린아이 걸음마 시키듯 천천히 아파트 주변을 걷는다. 맏이로서 할 도리는 하고 살았지만 살갑게 다가서는 딸은 아니었다. 겁먹은 아이처럼 오십 중반 넘은 딸을 놓칠세라 손을 잡고 이끄는 대로 따라온다. 아파트 문을 혼자서는 나서지도 못하고 엘리베이터를 타실 수도 없으니 딸이 없으면 영락없이 감옥에 갇힌 신세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서 밥을 짓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침 시간이 서둘러도 빠르게 지나갔다. 아이들이 대학 졸업 후 타지로 떠난 후에는 아침이 자유로워졌다. 바쁘게 사는 나를 배려한 남편이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출근하면서 늦잠을 자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가 친정엄마와 살면서 십여 년 만에 아침밥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잘 씹지를 못하시기에 여러 가지 반찬을 하기보다는 국을 끓여서 드리는 정도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두 달 전, 골다공증으로 갑자기 허리가 무너져 누워서 계신 지 한 달여 만에퇴원하고 우리 집으로 오셨다. 병원에서 퇴원하라고 해서 하긴 했는데 걱정이었다. 보행보조기를 대여해 와서 허리보조기를 채워 드리고 조금씩 걷기 연습을 했다. 며칠은 기저귀를 채워 드리다가 방 안에 휴대용 변기를 놔 드리고 매번 알려 드렸다. 집에 처음 오셨을 때는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가만히 계셨다. 표정도 없으셨는데 점점 나아지셔서 산책하러 나갔다.

오랫동안 걷지를 않으셨기에 아파트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조금만 걸어도 힘들다며 앉을 곳을 찾으셨다. 자연스레 흡연 장소에 놓인 의자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담배 연기는 바람에 흩어졌는지 심하지 않았다. 남편도 퇴근 후 6층을 오가며 자주 애용하는 곳이다. 낮이라서 그런지 의자에 앉아 흡연하는 이도 없다. 엄마와 나란히 앉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서 가끔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고 바람을 쐰다. 한참을 쉬다가 다시 걷기를 두세 번 반복한다.

내가 아니면 종일 아파트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엄마가 주간 보호센터에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 금요일까지만 가시기로 했다. 아침에 수업이 있으면 흡연 장소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시도록 약속을 하고 무리 없이 센터에 가셨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 1층으로 내려가 보니 의자에 앉아 계셨다. 센터에 가려고 나오셨단다.

엄마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의자에 앉아서 차를 기다리신다. 처음에는 두리번거리며 불안해하셨는데 이젠 제법 익숙해진 공간에서 즐기는 모습이다. 의자라는 사물이 적정한 곳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다. 그 자리에 의자가 없었다면 나의 아침은 얼마나 분주하고 힘들었을까. 시간 맞춰 엄마를 센터에 보내는 일이 녹록지 않은데 한결 편해졌다. 엄마 혼자 나오신 날도 그곳이 아니었다면 아찔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고마운 일이다.

유월 더위를 식히는 바람을 맞으며 엄마의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 일상이 휴식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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