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배낭골과 배낭징이

2024.06.26 14:36:14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배낭골'이라는 지명은 음성군 감곡면 영산리, 옥천군 청성면 묘금리, 보은군 내북면 법주리 등에 있으며 전국적으로는 많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배낭골, 배나무골, 배낭징이, 배나무징이' 등에서처럼 '배'라는 지명 요소가 '낭, 나무'와 결합되어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시대에는 '나무'를 '남ㄱ, 남그'라 하였으며, 여러 지방어에서는 아직도 '나무'를 '낭구'라 하므로 '배낭골'은 자연스럽게 '배나무골'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배낭골'은 동네에 배나무가 많아서 배나무골, 배낭골이라 했다는 지명 유래가 전해져 온다.

그런데 '배나무골'이라는 지명이 괴산군 청안면 효근리를 비롯하여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내암리,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 옥천군 청산면 대덕리, 보은군 삼승면 서원리,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 영동군 영동읍 당곡리, 음성군 금왕읍 유포리, 진천군 광혜원면 회죽리 등 충북 지역에만 해도 30여 곳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배나무가 많아서 배나무골이라 했다는 지명 유래는 언어의 유사성에 의한 임의적 해석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지명이란 지형적으로 다른 지역과의 차별성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므로 어디에나 많이 분포하는 참나무, 소나무, 그리고 어느 집에나 울 안에 심은 감나무, 배나무가 지형적 특성을 나타낼 수는 없는 것이며 이러한 나무 이름이 지명으로 사용되는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배나무골'이라는 지명은 자연스럽게 한자로 '이목리(梨木里)'라 표기하게 되는데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의 이목리(梨木里)는 옛날에 배나무 정자가 있어 '배낭징이, 배나무징이'라 전해져 왔다고 한다. 또한 마을에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마을의 지형의 '배(船)'의 모양이므로 장차 이곳에 큰 수해가 있어 마을이 크게 훼손될 것을 염려하여 돛대를 상징하는 나무를 심어 놓고 이어 배를 묶어놓는 닻돌을 마련해 놓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명에 나타나는 '배'는 '梨'가 아니라 '船'이니 원래 '배(梨)'와는 연관이 없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으며 '배나무정자'가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유사한 음을 잘못 해석하여 변이된 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리고 '징이'는 어떠한 지형 지물이 위치한 곳을 가리키는 말로서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에는 '배나무징이'의 '징이'를 정자로 보아 이목정리(梨木亭里)라 표기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배낭골'은 '배나무골, 배낭징이, 배나무징이'가 되고 한자로는 '이목리, 이목정리'로 표기가 되지만 이들이 모두 '배낭'을 '배나무'로 해석한 데서 파생된 것이다.

그렇다면 각 지역마다 흔하게 존재하는 지형적 특성으로서 '배낭'이란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지형은 넓은 들판보다는 크고 작은 산이 많아서 산골짜기에 마을이 들어서고 계곡에서 흘러오는 물가에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넓은 평야 지대라면 농산물이나 땔감을 비롯한 짐을 옮기는데 편리하게 수레를 이용하지만 산골짜기 지형이라서 주변이 온통 도랑이나 개천, 고개와 절벽 등 높고 낮은 턱이 많아 수레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지게라는 특수한 운반수단을 만들어 내었는데 이 지게라는 운반 도구는 짐의 무게를 온전히 두 어깨로 지탱하고 이동해야 했다. 그래도 높고 낮은 고개를 힘들게 넘어 다닐 수 있었지만 절벽은 속수무책이었다. 주변에 많이 존재하는 벼랑과 절벽은 우리 조상들의 생활의 벽이요 삶의 터전을 가로막는 벽이었기에 지형의 특성을 가리키는 지명에 많이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벼랑의 지형을 가리키는 지명 요소가 '벼랑골, 별왕골, 바랑골, 발산리(鉢山里), 바람골, 풍동(風洞), 발왕산, 비렁뱅이들(벼랑 인근에 있는 들), 비하리, 병막산(벼랑으로 막혀 있는 산), 벼리실, 별실, 별곡(別谷)'으로 변이되어 쓰이고 있으며 '벼랑'이 '배낭'으로 불리다 보니 '배낭골, 배나무골, 이목리(梨木里), 배낭징이, 이목정(梨木亭) 등으로 변이되어 전국 곳곳에 분포되어 있는 것이다.

하여튼 벼랑이라는 지형을 근거로 하는 지명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은 벼랑이 우리 조상님들의 삶을 얼마나 괴롭혀왔는지를 말해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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