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의 힘, 로컬을 넘어 글로컬로

2024.06.30 15:49:34

변광섭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대표이사

요즘처럼 로컬이란 단어를 많이 쓴 적이 있었던가. 서울 중심의 사고와 행정에서 벗어나 전 국토가 구석구석 발전하고 저마다의 색감을 자랑하면 좋겠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되면서다. 이제 지역은 더 이상 서울의 변방이 아니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로컬 브랜드를 특화하고자 애쓰면서 나라 안팎에서 주목받는 지방 도시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로컬은 다름의 또다른 이름이 되었다.

모든 도시는 과거를 기반으로 새로운 문화를 빚고 열린 세상을 만들고자 힘쓴다. 그 지역의 역사를 보존하고 활용하는데 저마다의 역량을 쏟는다.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과 예술활동으로 구성원간의 연대와 협력을 이끌고 있다. 자연과 농경을 터전으로 삼으며 저마다의 소박한 꿈을 일구기도 하지만 산업사회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려고 힘쓴다. 그리고 공간을 특화하고 크고 작은 축제를 통해 흥겨움을 더하며 관광산업 등으로 지역활력을 도모한다. 이 모든 것이 지자체와 지역의 주민이 손잡고 일구어 간다.

물론 지방화를 외치고 지자체마다 경제, 문화, 관광 등 차별화된 정책과 전략을 펼치지만 힘에 겨운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교육, 문화, 산업, 의료 등 현대사회의 필수항목 상당수가 서울과 수도권에 밀집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수도권의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가 또 있을까. 그래도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로컬은 내가 태어난 고향이고, 내가 살고 있는 소중한 땅이며, 내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보다 부유할 수는 없어도 서울보다 행복한 도시는 만들 수는 있다. 복잡하고 경쟁해야 하며 인간미 없는 대도시의 삶보다 삶의 여백이 있고 풍경이 깃들며 향기로운 이곳이 더 행복하고 건강할 수 있다. 최근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에 빵집이 생겼다. 빵 맛이 좋아 매주 들르다 보니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중년 부부가 운영하는 빵집인데 서울에서 장사하다가 내려왔다. 서울의 삶이 너무 힘들고 고됐기 때문인데 서울이 아니라면 어디든 좋겠다며 무작정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귀촌 3개월 만에 이 동네 최고의 빵집으로 등극했다. 당연히 부부의 행복과 만족도는 기대 이상이란다.

이같은 사례는 무수히 많다. 문의면 산골마을엔 서울서 내려온 청년이 벌꿀 농사를 짓고 있다. 이름하여 6차산업이다. 운천동의 골목길에는 서울서 잘 나가던 미디어아트 작가가 둥지를 틀었다. 고향인 청주를 거점으로 하되 전국을 무대로 활동 중이다. '살로메'라는 그룹의 재즈 아티스트 부부는 서울서 내려와 충주와 청주를 무대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문화제조창에는 글로벌게임센터가 있는데 수도권에서 활동하던 20여 개의 기업이 내려와서 세계를 무대로 콘텐츠 개발에 힘쓰고 있다.

허물을 벗지 않으면 허물 속에서 죽게 된다. 니체가 한 말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새로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책 『데미안』에서 불안한 젊음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환경을 개척하려는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청주는 기회의 땅이다. 문화예술과 문화산업, 그리고 관광분야에 이르기까지 마음만 먹으면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주시가 노잼도시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갈 곳 없고, 놀 곳 없고, 먹을 것 없는 무미건조한 도시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청주를 관광도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청주시민들의 고착화된 사고일 뿐이다. 우리에겐 푸른 바다는 없지만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펙토리 문화제조창이 있고, 국립공원은 없지만 2천 년 역사의 숨결을 이어온 원도심과 드넓은 대청호가 있다. 하늘길, 철길, 고속도로 등 사통팔달의 교통망은 지역과 세계를 촘촘하게 연결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로운 도시, 산업경제와 문화예술이 어울리는 도시, 지역과 세계가 하나되는 도시로의 위상을 다진 지 이미 오래다.

청주시는 10년 전 청원군과 통합되면서 더 큰 성장의 초석을 다졌다. 공간의 가치와 역사적 유산과 경제성장 및 문화예술이 그 어느 도시보다도 빠르게 성장하고 발전했다. 오송 철도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와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등 대규모 국책사업 유치, 충청권 광역급행철도 청주 도심 통과 확정, K-바이오스퀘어 등의 미래첨단산업 도시 기반 마련은 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과다. 청년 인구 증가율이 전국의 도시 중에서 가장 높다는 통계도 있다. 청년이 살맛 나는 도시가 되고있는 것이다.

또한 세계 도시경쟁력 평가에서 국내 기초 지자체 1위를 달성했고, 전국 기초 지자체 브랜드 평판 1위, 기업하기 좋은 도시 1위라는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문화도시, 법정문화도시, 세계공예가협회 공예도시 선정 등의 성과가 이어졌다. 노잼 청주가 아니라 꿀잼 청주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재즈 피아니스트 아마드 자할은 "문명은 문화없이 지속되거나 발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시의 성장에는 문화적 요건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청주의 발전상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청주시문화재단의 열정과 도전도 지역 발전에 한몫하고 있다. 불 꺼진 담배공장에 문화의 불을 지폈으며 청주시가 법정문화도시 전국 1등을 하고 공예비엔날레와 문화제조창이 대한민국 문화매력 로컬 100에 선정되는데 힘썼다. 지역의 자원을 공연 및 전시콘텐츠로 특화하고 원도심의 문화를 복원하며 예술인 창작지원과 시민들의 문화나눔을 통해 세계가 부러워하는 도시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청주의 자원 중 으뜸은 사람이기에 사람을 키우고 사람의 가치를 드높이는 일에 힘쓰고 있는데 이는 곧 청주시민의 문화적 자긍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성과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되 시대의 흐름을 읽었기 때문이고, 지역의 사람들이 창조적인 역량과 도전으로 도시를 가꾸었기 때문이며, 지역을 넘어 세계의 중심도시로 성장하겠다는 각오와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길이 하나의 숲에서 갈라져 있었지. 나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을 택했지.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을 바꿨지. 미국 시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에서 새로운 미래를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표현했다.

지난 10년은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으니 앞으로 100년은 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질주하고 멋지게 항해하며 글로컬 대표 도시로의 위상을 떨쳐야겠다. 한 번 더 나에게 질풍같은 용기를,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드넓은 대지에 다시 새길 희망을 안고 달려갈 거야 너에게~. 노래 '질풍가도'처럼 우리는 거침없이 달려야 하고 누군가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청주에는 100만 개의 빛나는 별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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