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파두르 후작부인의 초상화

2024.09.23 15:29:33

구본숙

미술평론가·수필가

18세기 프랑스는 루이 15세가 왕위에 오르며 자유롭고 감성적인 표현과 장식성을 극대화하는 로코코 미술 양식이 발달했다. 섬세함과 우아함, 세부적인 묘사는 당시 가볍고 화려함을 선호하던 프랑스의 귀족사회 취향을 반영한다. 프랑스 미술은 루이 14세의 시대가 끝나자 중후하고 웅장한 바로크 미술 양식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태양왕으로 불리던 루이 14세는 파리의 행정시설을 베르사유 인근으로 옮겨놓았고 따라서 귀족들도 베르사유 및 인근에서 거주하며 그들의 자유가 배제되었음은 물론, 높은 인구밀도에 따라 불만도 쌓여갔다. 이후 루이 14세가 사망하고 귀족들은 베르사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새로운 집을 지으며 건축, 미술, 공예 분야에서 섬세하고 장식적인 요소를 찾게 된다. 로코코 미술 양식이 성행한 시작점이었다.

루이 15세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결단력과 리더십이 부족했고, 후궁이었던 퐁파두르 후작부인(Madame de Pompadour, 1721~1764)에 정치와 외교를 의존했다. 프랑스에서 평민 출신으로 후궁이 된 사례는 퐁파두르 부인이 최초였다. 어린 시절부터 왕의 후궁이 되고자 귀족 자녀 이상의 교육을 받아왔다. 전 분야에 매우 성적이 우수했으며 특히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다. 그러나 왕을 만날 기회가 없었고 시간이 흘러 평범한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게 된다.

이후 마을에 사냥을 하러 온 루이 15세를 우연히 만나 떨어진 손수건을 주워주며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아름다운 외모뿐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훌륭했기에 루이 15세는 한눈에 그녀에게 마음에 빼앗긴다. 결과적으로 평민이었던 그녀는 후작 부인으로 격상했고 남편과도 자연스레 이혼하며 정식 후궁이 되었다. 루이 15세는 평생토록 그녀를 사랑했고 믿었기에 프랑스 정치와 외교에 도움을 받았으며 그녀도 최선을 다했다.

한편 로코코 시대의 화가인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 1703~1770)는 여러 작품 가운데 평생 12점의 초상화를 그렸고 그 중, 8점이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이다.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퐁파두르 부인은 자신을 아름답고 지적인 여성으로 그려낸 부셰를 후원했다. 특히 1756~1758년에 그려진 초상화(뮌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에 나타나는 퐁파두르 부인은 흰 피부에 고상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책을 보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빛나는 녹색 광택 소재의 옷감에 레이스와 자수로 장식이 되어있고 팔찌와 목걸이로 장식성을 더한다, 뾰족하고 굽이 높은 구두와 바닥에 놓인 장미가 인상적이다.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는 책이나 악보를 보고 있거나 장미로 장식된 작품이 주를 이룬다.

부셰는 초상화를 통해 인물의 특성을 내밀히 파악했으며 수요자에 의한 작품이지만, 대내외적으로 퐁파두르 부인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해 주었다. 평생 3천 권 이상의 독서를 한 퐁파두르 부인의 이미지를 잘 살려내 소품으로 책이나 악보를 주로 이용했다. 아름다움은 외모뿐 아니라 내면에서도 우러나온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초상화에서 표현된 그녀의 패션과 감각을 프랑스 상류사회에 영향을 끼쳤으며 오늘날까지 로코코 미술의 정수로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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