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기장으로 기준음을 찾다, 영동 박연

2010.08.15 10:53:20

조혁연 대기자

검은 기장으로 기준음을 찾다, 영동 박연 교박충-110

전통음악 전문가들은 우리고장 영동출신 박연(朴堧·1378~1458)을 가리켜 시운(時運)을 잘 타고난 사람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다. 세종이라는 든든한 지원자를 만난 것이 그 첫째가 된다. 전회에 밝힌 경석(옥설)의 발견이 그 두번째가 된다. 세번째는 오늘 다루는 거서(거黍, 거는 禾+巨), 즉 검인 기장과의 만남이다.

조선시대 때 소리의 기준을 정하기 위해 만든 원통형 대나무를 '율관'(律管)이라고 불렀다. 이 경우 율관을 기준음을 정하는 악기로 계속 사용하려면 그 율관의 전체 용적을 알아야 한다. 이때 사용된 것이 바로 검은 기장이다. 이는 검은 기장의 낟알이 매우 균질하고, 또 대나무관에 잘 들어갈 정도로 크기도 알맞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연은 검은 기장을 가지고 1알은 1푼, 10알은 1촌, 100알은 1척 등의 방식으로 도량형을 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황종, 대려, 태주, 협종, 고선, 중려, 유빈, 임종, 이칙, 남려, 무역, 응종 등 12개의 기준음을 얻었다. 이해가 잘 안되면 크기가 다른 12개 퉁소를 제작, 단계별 기준음으로 삼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중 황종은 12개 기준음의 첫 시작이기 때문에 '황종율관'(黃鐘律管)으로 별칭하고 가장 중요시 했다. 황종율관에 검은 기장을 넣어 본 결과, 낟알이 1천2백개가 들어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푼·촌·척으로 환산하면 9천촌이 됐다. 이 황종율관은 그후 척도로도 사용된다. 즉 황종율관의 길이를 자(尺)의 기준으로 삼게 된다.그 유명한 황종척으로,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31.25㎝다.

이쯤되면 박연은 소리 뿐만 아니라 도량형도 창출한 셈이 되고 있다. 기준음을 사전 약속으로 정하고 만든 것이 바로 16개 편으로 이뤄진 편경이다. 이 검은 기장인 거서가 황해도 해주에서 발견됐다. 그러자 당시 조정은 곧바로 이를 널리 재배케 했다.

'황해도 감사가 아뢰기를, "옹진현의 선군(船軍) 이철(李哲)의 밭에 한 껍질에 두 알이 든 기장이 있으므로, 그 유래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일찍이 신축년에 채전(菜田) 가운데 한 개의 기장이 났으므로, 이를 이상히 여겨 종자를 받아 해마다 심었습니다. 금년에 와서 작은 밭에 심어서 지금 20이삭을 위에 바칩니다 '고 하였습니다"

고 하였다. 호조에 명하여 그 고을 관원으로 하여금 창고 쌀로서 바꾸어 보내게 하여, 이를 적전(籍田)에 심었다. 이로 말미암아 검은 기장의 종자가 나라 안에 널리 퍼졌다'.- <세종실록>

박연이 잘 나가자 대신들이 시기하기 시작했다. 지신사 정흠지(鄭欽之) 등이 "모양의 제도와 성음(聲音)의 법을 어디에서 취했는가", "중국의 음(音)을 버리고 스스로 율관을 만드는 것이 옳겠는가" 등의 말로 박연을 노골적으로 깎아 내리는 모습이 실록에 등장한다. 그러나 주군 세종은 박연의 성과를 바로 알아봤다.

'임금이 말하기를, "중국의 경(磬)은 과연 화하고 합하지 아니하며, 지금 만든 경(磬)이 옳게 된 것 같다. 경석을 얻는 것이 이미 하나의 다행인데, 지금 소리를 들으니 또한 매우 맑고 아름다우며, 율(律)을 만들어 음(音)을 비교한 것은 뜻하지 아니한 데서 나왔으니, 내가 매우 기뻐하노라"'.-<세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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