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와 청주양씨와의 질긴 악연

2010.08.29 18:03:12

조혁연 대기자

세종~문종 연간의 인물로 양후(楊厚·?~1451)가 있다. 그는 지금의 건설교통부 차관과 서울특별시장에 해당하는 공조참판(종2품)과 한성부윤(정2품)을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졸기는 매우 단촐하다.

'동지중추원사 양후가 졸(卒)하니, 혜빈(惠嬪)의 숙부였다.양후에게 관곽(棺槨)과 장사에 쓸 여러 물건을 부의하였다'.-<문종실록> 이는 당시 사관이 어떤 이유로 양후를 탐탁히 여기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징조는 이미 세종대에 나타났다. 그는 충청도관찰사로서 수령들에 대한 인사 평점을 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 인지 50명 중 40여명에게 상등(上等)을 줬다. 상등은 과거 교육식으로 말하면 '수'에 해당한다.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잇따라 상소를 올렸다.

'사헌부에서 또 아뢰기를, "양후가 출척(黜陟)의 소임을 가지고 있는데 충청도 50여 고을에 수령 40여 인을 상등으로 삼았사오니, 포폄(褒貶)이 이미 적중함을 잃었삽고, (…) 비록 죄는 주지 않을지라도, 그 직책을 파면하시와 징계하시기를 청하옵니다"'-<세종실록>

그러나 세종은 "전에도 또한 이러한 감사가 있었어도 모두 파직시키지 않았으니, 이제 한 사람만을 파직시킬 수 없다"라는 말로, 대간 요구를 거부한다. 본문 중 '포폄'은 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을 일컫는다.

세종대왕은 정비 소헌왕우 심씨 외에 9명의 후궁을 더 둬, 이들에게서 19남 4녀를 얻었다. 후궁 중에는 혜빈양씨가 있다. 내명부 궁녀 출신인 그녀는 병약한 문종을 보살펴주던 중 세종의 눈에 들어 4번째 후궁이 됐다. 그녀는 세종과 사이에 한남군(漢南君), 수춘군(壽春君), 영풍군(永豊君) 등을 얻었다.

바로 양후는 혜빈양씨의 숙부, 즉 작은 아버지가 된다. 실록에는 양후가 혜빈양씨 때문에 세종의 특혜를 받았다는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 세종이 혜빈의 숙부인 양후를 배려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혜빈양씨는 이런 세종을 위해 단종의 유모 역할을 하고, 또 옥새를 지키려다 유배지에서 교살당한다고 전회에 밝힌 바 있다.

양후, 혜빈양씨 모두 우리고장 '청주양씨'다. 동시대에 활동한 청주양씨로는 양정(楊汀·?~1466년)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한명회의 권유로 수양대군 휘하에 들어가 김종서, 황보인을 살해하는 등 계유정난의 공신이 됐다. 그러나 술을 많이 마신 후 세조에게 용퇴를 건의하다 진노를 사 성문 밖에서 참수됐다.

'술이 반쯤 취하니(…), 양정이 대답하기를, "전하께서 임어(臨御)하신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오로지 한가하게 안일하심이 마땅할 것입니다" 하므로, (…)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평소부터 왕위에서 물러나 스스로 편안하려고 했으나 감히 하지 못하였다" 하니, 양정이 말하기를, "이것이 신(臣)의 마음입니다" 하였다.-<세조실록>

이처럼 청주양씨 문중은 세조와는 질긴 악연을 맺고 있다. 통상 세거지에는 묘역, 사당, 정려 등 기념물이 존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세조와의 악연이 있어서 그런지 청주나 근교 청원지역에는 청주양씨의 기념물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청원군 옥산면 사정리와 호죽리 일원에서 일부 집성을 이루나 그 세는 한미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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