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 선생 체포된 곳 잘못 알려져 있다"

충대 박걸순교수 확인
"1928년 대만 기륭항이 아닌 기륭우편국"
위조어음, 활동 자금으로 찾으려다 체포
당시 국내언론 오보로 지금껏 잘못 전달

2011.02.27 19:02:09

일제 점령기의 대만 기륭우편국 건물 모습으로, 지금도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이 마지막으로 체포된 곳은 대만 기륭항이 아닌 기륭 우체국이라는 사실이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특히 일본 경찰이 미행을 하고 있는데도 신채호는 이 사실을 모르는 등 피체 당시의 이면적인 모습도 생생히 밝혀졌다.

신채호의 체포 과정에 대해서는 '1928년 대만 기륭항에 상륙하려다가 그 직전에 피체됐다'는 설이 지금까지의 정설이었다.

그러나 곧 발표된 충북대 박걸순(사학과·사진) 교수의 '신채호의 아나키즘과 동방피압박민족연대론' 논문에 따르면 단재가 체포된 곳은 지금까지 알려진 대만 기륭항이 아니라 기륭(基隆·대만발음 지룽) 우편국(郵便局)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내용은 지난해에도 일부 제기됐으나 논문을 통해 종합적, 구체적으로 규명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단재 신채호 체포 사실을 기사화한 당시 현지 신문인 '대만일일신보'(臺灣日日申報). 제목에 '우편 위체(환어음)를 위조했다'(僞造郵便爲替)는 내용이 보인다.

박 교수는 이같은 사실을 당시 현지 신문인 '대만일일신보'(臺灣日日申報)를 통해 확인했다고 논문을 통해 밝혔다. <그림 참조>

당시 대만일일신보는 △대만 기륭항에 도착한 단재는 1928년 5월 8일 위조 위체 2천원을 찾기위해 기륭우편국에 나타났고 △그러나 당시 대만당국은 위조 위체가 유통되고 있는 사실을 이미 감지, 비밀수사에 돌입한 상태였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위조 위체 2천원을 찾기위해 기륭우편국 창구에 모습을 드러낸 단재는 유문상(劉文祥)을 사칭해 지급청구서에 서명 날인한 뒤 현금을 수령하려던중 기륭수상파출소 與世山 형사에게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위체'는 멀리 있는 채권자에게 현금 대신에 어음, 수표, 증서 따위를 보내어 결제하는 것으로, 일종의 환어음을 일컫고 있다.

유문상이라는 이름은 단재가 개설한 구좌명으로, 그는 기륭항 입국 때 쓴 선박 명부에도 이 이름을 그대로 게재했다. 따라서 일본 경찰도 이미 이때부터 단재를 미행하기 시작했다고 논문은 신보를 인용해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채호의 대만 기륭항 체포설이 광범위하게 유포된 것은 당시 국내 모 일간지가 오보를 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국내 모 일간지는 '신채호는 5월 8일 경에 柳炳澤이라고 변명한 후 책임액 1만 2천원을 찾기 위해 일본 門司를 거쳐 恒春丸으로 臺灣 基隆港에 도착하여 상륙코자 하는 즈음 基隆水上警察署에게 발각 체포됐다'라고 사실과 다르게 보도했다.(1928년 12월 28일자)

논문은 단재가 찾으려고 했던 자금 성격에 대해 △무정부주의자 동방연맹(1927)이 결성된 후 이듬해 국내에서 이른바 '宣言'이 채택됐고 △이때 방법론으로 무장투쟁이 결정됐으며 △이때부터 방법론을 실천으로 옮길 자금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한편 박교수 조사 결과, 대만 기륭우편국은 외형만 현대식으로 바뀌었을 뿐 건물은 단재가 체포되던 그 장소에 그대로 위치하면서 지금도 기륭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 조혁연 대기자

☞기륭시

대만 북쪽 끝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수도 타이베이시(臺北市)에서 고속도로로 약 15분 거리에 있다. 연평균 강수량이 5천mm에 이를 정도로 비가 많이 와 우항(雨港)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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