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의 시각예술은 마냥 고리타분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기하학적인 미가 매우 풍부하다는 이론이 등장했다.
충북대 학제간융압연구사업팀이 얼마전 '예술과 과학의 만남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한성대학교 지상현(미디어디자인학과) 교수는 '예술에서 과학으로-오래된 미술의 현대성'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지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독자들이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저널리즘 시각으로 재구성해 소개한다.
글싣는 순서는 ①신윤복, 그림틀을 이용하다, ②조선다완, 45도 각도의 비밀, ③철사태반호, 그 심리적인 지평선, ④달항아리, 원의 영감을 품다 등이다.
김홍도(金弘道·1745~?)와 신윤복(申潤福·1758~?)은 조선시대 미감을 양분하면서 거의 동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둘의 그림은 묘사, 구도, 색채, 대상 선정 등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교수는 이중 구도 부분을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김홍도의 그림 '벼타작'으로 전체적으로 '역Z자' 구도를 하고 있다. 김홍도는 4변을 이용하지 않았다.
김홍도 대표작의 하나인 '벼타작'(보물 제 527호. 28x24cm)은 전체적인 구도가 '역Z' 자 모습으로, 동적 구도를 연출하고 있다.
상단 우측에 갓을 삐딱하게 쓰고 또 신발을 아무렇게 벗어 놓은 젊은 양반이 배치돼 있다. 왠지 건들거리는 성격의 인물처럼 보여진다.
그 대각선 아래 방향으로는 어두운 표정이면서 다소 힘들어 하는 늙은 머슴이 배채돼 있어 묘한 구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김홍도는 늙은 머슴의 등이 그림틀 변두리에 닿게 그리는 등 사각틀(4변)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다. 지교수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그림 '씨름'에서도 같은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신윤복은 다르다.
지교수는 "그림틀, 즉 4변을 철저히 의식한 것이 신윤복"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이것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기방거사'(28.3×35.4cm·간송미술관)를 꼽았다.
그림에서 보듯 '기방거사'(일명 기방무사)에 등장하고 있는 댓돌, 기둥, 처마, 문틀, 발 등은 4변과 수평 혹은 수직적으로 철저히 평형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신윤복 그림 '기방거사'이다. 화폭에 등장한 대상이 4변과 수평, 수직적으로 철저히 평형구도를 하고 있다. 신윤복은 4변을 의식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신윤복은 화폭에 등장하는 대상을 일종의 공예품으로 보고 색, 형태, 구도를 예쁘게 다듬으려 했다"며 "따라서 당시 사회적 의미나 규범은 결국 시각적으로 재구성됐다"고 밝혔다.
색의 조화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기방거사'에서 보듯 신윤복은 주(主)가 되는 대상을 가운데 위치시키고, 색은 적·황색 등 높은 채도 계열을 사용했다. 반면 부(副)가 되는 대상은 변두리로 밀어내고 채도가 낮은 청색 계열을, 그것도 흐릿하게 사용했다.
김 교수는 "신윤복 그림은 윤곽선이 약하기 때문에 자칫 힘이 없어 보일 수 있다"며 "그러나 그림의 주가 되는 대상을 적·황 등 채도가 높은 색으로 강조, 이를 벗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신윤복이 더 오래 살아 기법의 변화가 있었으면 몬드리안 그림을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지교수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곧 책으로도 출간할 예정이다.
/ 조혁연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