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에서 태어났을까, 연산군의 장녹수

2011.03.29 18:12:36

조혁연 대기자

조선시대 '예무이적'(禮無二嫡)의 논리가 있다. '한 남편에게 두 사람의 정실 아내는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겉으로는 그럴듯 해보이지만 이같은 논리 때문에 첩에게서 난 자식은 모두 천인이 돼야 했다.

연산군(燕山君, 1476~1506)의 9번째 여자인 장녹수(張綠水·?~1506)는 천인 출신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첩이었고, 이 때문에 장녹수는 제안대군(齊安大君·성종의 친형)의 가노(家奴)에게 시집을 가야 했다.

장녹수는 의외로 미모는 빼어날 정도로 뛰어나지 않았으나 노래를 무척 잘 했던 것으로 사료는 적고 있다. 그녀는 '노비의 아내'였던 시절에 노래를 배운 것으로 보인다.

'성품이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맞추었는데,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서 생활을 했으므로 시집을 여러 번 갔었다. 그러다가 대군의 가노의 아내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가 되었는데,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연산군일기>

연산군과 장록수 사이에 연분이 싹트도록 한 사람은 삼촌 제안대군이었다. 이미 폭정기에 접어든 연산군이 어느날 미복 차림을 하고 한잔 걸칠 요량으로 삼촌집을 찾았다. 게서 만난 것이 장녹수다. 이때부터 연산군은 그녀의 치마폭에 묻혔고 폭정의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얼굴은 중인(中人) 정도를 넘지 못했으나, 남모르는 교사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으므로, 왕이 혹하여 상사(賞賜)가 거만이었다. (…)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 같이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 왕이 비록 몹시 노했더라도 녹수만 보면 반드시 기뻐하여 웃었으므로…'-<연산군일기>

서두에 장녹수에게 총기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녀에게도 양반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장한필(張漢弼)이라는 인물로 당당히 문과에 합격한 양반이었다. 사료 국조문과방목을 보면 그는 예종 1년에 실시한 과거시험에서 병과 4위로 합격했다.

그후 그가 발령을 받은 곳이 바로 우리고장 '문의현'이다. 당시 문의는 종5품의 현령이 관할했다. 장한필의 생몰 연대는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만약 그가 문의현령 시절에 집의 노비를 첩으로 삼았다면, 그의 딸 장녹수의 출생지가 문의라는 추정도 가능할 수 있다.

'전교하기를, "장한필은 어느 때의 조사(朝士)인가" 하매, 승지 이자건이 아뢰기를, "장한필은 문과출신으로서 신이 무신년에 경차관으로 충청도에 갔을 때 장한필이 문의 현령이었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장한필의 내력을 상고해서 아뢰라" 하였다. 장한필은 숙원 녹수(祿壽)의 아비인 까닭으로 물은 것이다.'-<연산군일기>

인용문을 자세히 뜯어보면 연산군의 당시 심리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연산군은 장녹수가 비록 천인이었으나 그 아비되는 사람이 누구인가는 무척 궁금했던 모양이다. 폭군 연산군에게도 엿보기 심리가 있었다.

장한필의 이름은 이후 조선왕조실록에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마지막은 미지의 것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중종반정으로 장녹수가 한양 저잣거리에서 참수될 때 그도 연좌제에 의해 화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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