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태반호, 그 심리적인 지평선

조선도공, 線 하나에도 고뇌를 거듭하다
대충 그리면 구도 깨지고 안정감 못느껴
독특한 반대칭 기법과 배색 조화 현대미
거친 질감은 '박수근 마티에르기법' 연상

2011.04.04 18:55:19

조선 도공들은 심리적 지평선을 표현하기 위해 무척 고민한 것 같다. 붓자욱철사태항아리(좌)는 심리적 지평선이 제대로 구현됐으나 백자난초항아리는 그렇지 못한 느낌을 준다.

우리 선조들은 어머니 뱃속의 아이에게 생명과 혈액을 공급한 태반을 매우 신성하게 여겼다.

때문에 왕실이나 사대부가에서는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이 태반을 길지와 길일인 날을 택해 매장했다. 이때 사용된 용기를 태항아리(태반호)라고 불렀다.

태항아리는 땅에 묻히는 용기이기 때문에 조형적인 미감(美感)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선의 도공들은 태항아리에도 미감을 불어 넣었다. 그것도 단순한 미감이 아니라, 하나하나 뜯어보면 무릎을 탁 칠 정도의 내공을 쏟았다.

한성대 지상현(미디어디자인학과) 교수가 충북대 학제간융합연구사업팀이 주최한 '예술과 과학의 만남 심포지엄'에서 조선 태항아리의 하나인 '붓자욱철사태반호'(사진)의 미감을 전문가적 식견으로 분석했다.

15~16세기 사대부가에서 제작·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태항아리는 높이 48㎝의 크기를 지니고 있다. 조선왕실에서는 백자 태항아리를 주로 사용했다.

그림에서 보듯 붓자욱철사태반호는 땅속에 묻혔던 용기치고는 의외로 고급스런 미감을 풍기고 있다.

지 교수는 그 이유를 품위있는 색조와 현대적인 문양 등 두가지 분석으로 설명했다.

그는 전자에 대해 "진갈색 연꽃 문양과 백토가 덧칠된 태토 사이에는 밝기 대비만 있지, 색상대비는 없다"며 "이처럼 적황색이라는 동일한 계통의 조화와 배색이 태항아리를 고급스럽게 보이게 한다"고 밝혔다.

후자에 대해서는 "연꽃 문양을 지금보다 더 낮은 위치에 그리거나 작게 여러개를 그렸으면 보다 안정적이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다행히 연꽃 하단부에 짙은 태토색이 존재, 그것이 심리적인 지평선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구도 부분도 언급, "칼로 자른 듯한 연꽃을 사이에 두고 가늘면서 말려든 모양의 연잎이 양쪽에 그려져 있다"며 "그러나 이 두개 연잎은 대칭, 비대칭도 아닌 반대칭 모습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교수가 언급한 '반대칭'은 대칭에서 조금 이탈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대칭과는 또 다른 맛의 생동감을 안겨주고 있다.

다소 후대에 등장했던 '백자난초무늬항아리'(사진·18세기)에도 심리적인 지평선이 관찰되고 있다.

그러나 붓자웃 철사 태반호와 달리 이 항아리에서는 안정감보다 어색함이 느끼지고 있다.

그는 "난초가 조금 아래쪽에 있었다면 항아리의 바닥을 심리적 지평선으로 삼았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일부러 그은 지평선이 도리어 어색함을 안겨주고 있다"고 밝혔다.

지교수는 "철사태반호는 독특한 대비의 기법과 배색의 조화로 현대미를 창조하고 있다"며 "그것은 마치 박수근 그림의 마티에르 기법을 연상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 조혁연 대기자

마티에르 기법

캔버스, 붓놀림, 그림의 재료 등이 만들어 내는 화면의 재질감을 의미한다. 서양화가들은 안료를 화면에 두텁게 바르거나 모래 등 이물질을 섞어 칠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국내서는 박수근의 그림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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