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를 가리켜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내는 도자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같은 분석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충북대 학제간융합연구사업팀이 얼마전 개최한 '예술과 과학의 만남 심포지엄'이 이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이 자리에서 한성대학교 지상현(미디어디자인학과) 교수는 백자 달항아리 △출현한 배경 △조형적인 면 △심리적인 면 등의 방향에서 분석, 나름의 이론을 전개했다.
지 교수에 따르면 양반으로 대표되는 조선시대 집권층은 중국보다도 더 근본주의적인 성리학을 추구했다.
성리학 이론을 자구 하나 고치려 하지 않았고, 대신 양명학과 같은 수정이론은 경시내지 무시했다. 그것이 조형적으로 발현된 것이 백자 달항아리라고 지 교수는 언급하고 있다.
그는 "조선 사대부는 자신이 믿는 질서와 원칙에 강박적으로 집착했다"며 "때문에 그 것이 반영된 달항아리에서는 내적 통제감을 얻으려는 남성적 내향성이 읽혀지고 있다"고 밝혔다.
백자 달항아리는 텅 비운 모습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백자 달항아리는 아무런 장식이나 문양없이 그저 둥근 달덩어리가 턱 하니 놓여 있는 모습이다. <그림 참조>
지 교수는 이에 대해 "현대미술의 미니멀(Minimal) 기법이 18세기 백자 달항아리에서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장인은 조형을 완성하는 선 굵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 소소한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며 "이런 담백하고 직설적인 조형에서는 작위적 형상의 유혹을 단호히 날려버리는 날 선 자존심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작고한 김원룡도 이같은 고즈넉한 조형미를 두고 "보고 있으면 백운(白雲)이 날고 듣고 있으면 종달새가 운다"라고 표현한 바 했다.
달항아리 형태인 원(圓)은 김환기와 칸딘스키 그림(오른쪽)의 주요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원(圓)은 해와 달의 모습으로, 어떤 형태보다 눈에 쉽게 띄고 오래 기억된다. 지 교수는 "백자 달항아이의 친근감이 여기서 우러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화가 김환기(金煥基·1913~1974)도 백자 달항아리를 백자 달항아리를 주요 소제로 삼아 즐겨 그린 바 있다. <그림 참조>
그는 "원의 형상을 한 백자 달항아리는 텅 비운 모습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다"며 "때문에 칸딘스키(그림 참조)와 같은 현대 모더니즘의 대가들도 원을 가장 기본적인 형태소의 하나로 여겼다"고 밝혔다.
/ 조혁연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