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軍 동학농민군 학살' 족적 쫒는 日사학자

오노우에 부부, 19대대 한국활동 연구
규명위해 한국어 배우고 자전거 여행

2011.04.18 18:00:05

일본내 동학 연구자인 오노우에 마모루씨(좌)가 신영우 교수 초청으로 지난주 부인과 함께 충북대를 방문했다. 책은 동학농민군 연구 내용이 실려 있는 '식민지 조선과 에히메의 사람들'.

"역사 연구는 오직 진실만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군이 조선 동학농민군을 상대로 저지른 행위는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밝혀져야 합니다".

일본 에히메(愛媛) 현에서 동학진압군의 한 부대인 일본 후비보병 제 19대대를 연구해 온 오노우에 마모루(尾上守) 향토사학자가 부인 토시코 여사와 함께 지난주 충북대를 찾았다.

오노우에 씨는 얼마전 '식민지 조선과 에히메 사람들'(그림 참조)이라는 연구 저서를 그가 속한 일본코리아협회 이름으로 발간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충북대 신영우(사학과) 교수가 두 부부를 역으로 초청했다. 오노우에 씨는 신교수 논문이 이번 저서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 장문으로 게재한 바 있다.

책 표지는 '잊어서는 안되는 과거가 있다'(아래 큰 활자)는 내용과 함께 '일본의 한국병합 백년을 계기로 에히메 사람들의 족적을 추적한다'(아래 고딕체)는 문장을 싣고 있다.

오노우에 씨가 동학농민군 진압에 투입된 여러 병력 중 유독 후비보병 제 19대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대 구성원의 대부분이 에히메 지역 출신자들로 구성된 것이 이유가 됐다.

후비보병 제 19대대는 미나미 고시로(南小四郞) 소좌가 지휘하던 부대로, 이 부대가 국내에 투입된 1894년 11월 중순이후 동학농민군 희생자가 급증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후비보병'은 한국군 편제에는 존재하지 않는 형식으로, 제대 후 재소집된 나이 많은 예비역 정도를 일컫고 있다.

따라서 오노우에 씨가 이날 신 교수에게 답례 형식으로 전달한 책은 크게 △일본 에히메 지역에서의 19대대 모병과 출정 △한국에서의 활동상 △귀향 후 해체 과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전자에 대해 "나이는 20대 후반~30대 초반으로 농어민 출신이 많았다"며 "그러나 청일전쟁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전투력은 매우 뛰어났다"라고 책을 쓰고 있다.

그는 귀향후 해체 과정에 대해서는 "참전한 6백20여명중 1명만 중도에 병으로 죽고 모두 생환했다"며 "이들은 현도(縣都) 마쓰야마에서 성대한 환영행사를 받은 뒤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제 19대대의 한반도 활약상은 신 교수의 논문을 번역해 싣는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단순 번역이 아닌, 관련 지도는 새롭게 제작해 싣는 등 최고의 성의를 표했다.

책은 후비보병 19대대의 충북도내 진로를 충주-청주-문의-증약-옥천 순으로 지도위해 표시했다. 그리고 12월 17일에는 19대대 중 일부 소대가 동학 마지막 전투로 불리는 보은 북실전투에 참전했다고 쓰고 있다.

한편 오노우에 씨는 이날 점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19대대의 한국 활동을 보다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웠고 또 지난 80년대 중반 남부지방을 자전거로 여행하기도 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뇌경색 후유증 때문에 19대대 연구 동지인 아내가 대신 한국어 통역을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일본인들 참으로 무서운 면이 있다"며 "국내 향토사학자 중 몇명이 일본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열도를 자전거로 여행하겠느냐"고 반문했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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