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도심서 통일신라 토루 발견

호암동·만리산 구간에 6백여m 잔존
현재로서는 국원성 나성으로 추정돼
중원경 치소싸고 또한번 논쟁 불가피

2011.05.02 20:31:02

충주 도심에서 7~8세기 무렵의 통일신라 때 토루(土壘) 흔적의 일부가 발견됐다. 이에따라 중원경 치소의 본래 위치를 둘러싸고 또 한번의 논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원성 나성(외곽 점선) 추정도로, 둘레가 6㎞에 이르고 있다. 안쪽 사각형은 일제 강점기 기간에 훼철된 충주읍성(국원성 내성) 추정도이다.

(재)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은 지난해 11월부터 충주시 일원에서 충주읍성에 대한 학술조사 작업을 벌여왔다.

그 결과, 통일신라시대 국원성(國原城)의 나성(羅城)으로 보이는 토루 흔적 을 충주시 호암동과 만리산 구간 등 두 곳에서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삼국사기에는 '진흥왕 18년(557)에 국원소경을 설치하였으며, 문무왕 13년(673) 9월에 둘레 2천592보의 국원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국원성은 후에 중원경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또 당시에는 성을 이중으로 쌓는 경향이 있었고, 이중 바깥성은 나성(羅城) 또는 나곽(羅郭)이라고 불렀다.

연구원측은 호암동 구간에 대해 "현재 약 380m 정도 잔존하고 있고, 내외협축(일명 양쪽면 쌓기) 구조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리산 구간에 대해서는 "현재 약 280m 정도 잔존하고 있고, 외축내탁(일명 한쪽면 쌓기) 구조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원측은 축조 시기가 통일신라 시대임을 입증하는 유물로 함께 수습된 도기와 기와편 등을 제시했다.

노병식 연구실장은 이같은 내용을 종합, △토루는 구릉 능선과 평지로 이어지면서 마름모꼴 정방형 모습을 하고 있고 △한변 폭은 대략 1.6㎞로, 둘레 전체는 약 6㎞라고 밝혔다.

특히 "주변의 구릉 능선을 잘 활용한 것으로 보아 계획적인 구상을 한 후 나성을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성벽은 동서남북 네 방향을 거의 맞추고 있다"며 "다만 남북축이 약간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말했다.

호암동 구간에 남아 있는 국원성 토루 흔적이다. 내외협축(일명 양쪽면 쌓기) 모습을 하고 있다.

한편 국원성은 항몽 기간(1231~1253)에는 '충주성'으로 불리는 등 문헌상 고려시대 말까지 경영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들어서는 내성(위성지도의 안쪽 사각형)만 경영하고, 나성(〃 바깥 점선 사각형)은 방치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은 '충주읍성이 3천650척의 石築山城으로 이뤄졌다'고 밝히고 있어, 나성(외곽)을 성곽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충주읍성은 이 마저도 일제에 의해 1910년을 전후로 훼철돼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한편 연구원측의 이같은 주장은 국립중원문화재연구원이나 충주지역 일부 사학자의 주장과 정변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통일신라시대의 대규모 공동묘지인 누암리 고분군 등이 시내 지역이 아닌, 남한강 서쪽인 탑평리 7층석탑(일명 중앙탑) 인근에 집중 분포하고 있는가를 설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원문화재연구원측은 지난해 중앙탑 인근에서 지하 유구를 다수 발견했고, 이를 중원경의 치소와 관련이 있다는 견해를 내놓은 바 있다.

노 실장은 이에대해 "발견된 토루는 국원성의 나성이 아니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며 "다만 당시 치소가 나중에 중앙탑 인근으로 옮겨갔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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