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과 남한강도 노래하다, 임제

2011.05.15 18:17:54

조혁연 대기자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가 / 홍안은 어디두고 백골만 묻혔는가 / 잔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 하노라'.

임제(林悌·1549∼1587)의 시조다. 그는 서도병마사가 되어 임지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의 무덤을 찾았다. 그리고 위 시조를 짓고 제사지냈다가 부임하기도 전에 파직당했다.

임제는 그후 다시 복직되나 본래의 호방한 성격은 서로 헐뜯고 비방하고 질시하는 벼슬아치 사회에 대해 환멸과 절망을 느낀다. 그는 10년간의 관직생활을 뒤로 하고 전국을 유람하기 시작했다.

이때 만난 여성이 한우(寒雨)라는 평양 기생이다. 둘이 나눈 시조가 '해동가요'(김수장), '청구영언'(김천택)에 각각 전해지고 있다. 먼저 임제가 한 수 읊는다.

'북천(北天)이 맑다커를 / 우장(雨裝) 업시 길을 나니 /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 온다.'

한우가 화답한다.

'어이 얼어 잘이 므스 일 얼어 잘이 / 원앙침(鴛鴦枕) 비취금(翡翠衾)을 어듸 두고 얼어 자리 / 오늘은 비 맛자신이 녹아 잘 노라.'

임제가 '한우'라는 기생 이름에 빗대어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자겠다고 한다. 그러자 한우는 자신을 찬비에 빗대어 원앙침 비취금 속에 녹아 자라고 한다. 남녀간 서로의 수작을 노래한 시조임에도 그 표현이 속되 보이지 않는다.

임제는 이런저런 방황생활을 하다 39살 나이에 지금의 전남 나주시 다시면에서 짧은 생애를 마쳤다. 임제는 나주인이나 우리고장과도 적지 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28세 과거에 합격했다.

그전에 학문을 연마한 곳이 속리산이다. 그는 22세 되던 어느 겨울날 호서(湖西)를 거쳐 서울로 가는 길에 우연히 보은사람 성운(成運·1497~1579)을 만나 속리산 자락에서 수학했다. 이 때문인지 그는 속리산과 관련된 시도 남기고 있다.

'도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건만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道不遠人人遠道) /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건만 속세가 산을 떠나네.(山非離俗俗離山)'

이 문장은 중용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서 그 운을 빌렸다. 중용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으나(道不遠人) / 사람이 도를 행한다면서도 사람을 멀리하면(人之爲道而遠人) / 도를 이룰 수 없다(不可爲而道).'

생전의 임제는 방랑과 피리 그리고 술을 좋아했다. 그 방랑의 성격이 내륙의 물길 남한강도 찾았던 모양이다. 그의 시 '배를 타고 가면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산꽃은 나를 보고 웃고 / 물새는 나를 들으라고 노랠 부르네 / 마름 향기가 그치지 않고 불어오고 / 지는 해가 푸른 물결을 비추네 / 외로운 돛단배가 별포를 지나가는데 / 강과 하늘이 저물어 피리소리만 들리네 / 바뀌는 병풍 그림을 앉아서 보느라고 / 배가 얼마나 흘러갔는지도 알지 못했네 / 누암에서 한강 어구까지 / 물길 삼백리 / 물새들 우는 소리가 벌써 들리니 / 어느덧 내 갈 길이 벌써 다왔네 / 학을 탄 사람이 도리어 우스워라 / 날고 또 날며 그칠 줄을 모르니'

인용문에 등장하는 누암은 지금의 충주시 가금면 누암리 일대를 일컫는다. 그는 죽기 전 아들들에게 "내가 죽거든 곡을 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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