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령의 鶴이 되다, 황간 가학루

2011.05.24 18:12:02

조혁연 대기자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는 혼동되는 면이 있다. 한자가 둘의 차이점을 어느 정도 설명해 주고 있다. 누각 할 때의 '다락樓' 자는 마치 이층집 모습을 하고 있다. 바로 누각은 1층은 기둥만 세운 채 벽을 비우고 2층에는 마루를 깐 건축물로, 관아에서 부속 건물로 짓는 경우가 많았다.

정자는 규모가 누각보다 작으면서 1층으로만 지어지면서, 과거 선비 개인의 피서나 음풍농월 장소로 주로 이용됐다. 누각과 정자의 공통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누허즉능납만경'(樓虛則能納萬景)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의역하면 '누각이 비어 있어야 주변의 많은 경치를 불러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은 취경 즉, 경치를 불러들이기 위해 누정에 벽과 문을 설치하지 않았다. 선사상은 '마음을 비워야 선행을 쌓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둘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충북에도 유명한 누정이 적지 않다. 지명도가 높은 누정으로 제천 청풍의 한벽루(보물 제528호)와 영동 황간의 가학루(도유형문화재 제 22호) 등이 있다. 청풍 한벽루는 물가, 가학루는 추풍령 바로 밑의 영로(嶺路) 변에 위치하고 있다.

가학루는 조선 태종 3년(1403)에 당시 황간현감 하담(河澹)이라는 인물이 처음으로 세웠다. 이후 숙종 42년(1716)과 정조 5년(1781) 그리고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 각각 중수를 해 오늘에 이른다.

가학루할 때의 가학은 '탈 駕'와 '학 鶴' 자로, 당시 경상도 관찰사 남재(南在·1351∼1419)가 이름지었다. 의역하면 '마치 학이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듯 하다' 정도가 된다. 이첨(李詹·1345∼1405)이 가학루 기(記)에 남개의 작명 사연을 보다 자세히 밝혀 놓았다.

'공(公)이 두 번째 순시하러 왔다가 여기 올라가 보니 큰 산, 긴 골짜기의 구름과 달, 거친 터와 들, 물 위에 바람과 연기, 물고기가 냇물에 헤엄치며 흐르고, 새가 구름에 나는 조화(造化)의 묘한 것이 눈에 접하여(…) 공(公)은 이에 현판을 써서 가학(駕鶴)이라 했으니…'-<신증동국여지승람>

인용문에 등장하는 '공'은 남개를 말한다. 그는 조선 개국공신의 한 명으로, '이성계를 창업자로 추대하자'는 아이디어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세종실록> 졸기는 그에 대해 '고려가 조선으로 세상이 바뀔 무렵에 태조를 추대하는 모략이 재(남재 지칭)한테서 많이 나왔고…'라고 적고 있다.

추풍령 북쪽사면을 넘어서면 바로 황간이고, 황간향교 앞에 있는 가학루는 그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길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조선시대 뭇 문장가와 묵객들이 가학루의 경승(景勝)을 노래했다. 이중에는 당대 문호 서거정도 포함돼 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황주는 황간, 원유편은 중국 초나라 굴원이 지은 글을 말한다.

'황주(黃州)는 참으로 맑으니, 가서 머물고 싶네. 학은 날아 갔어도 누각은 그대로 있고, 산은 높고 물은 절로 흐르네. 나는 새의 등을 굽어보고, 바로 큰 자라 머리에 올랐네. 한없는 등림의 흥(興)은, 긴 노래로 멀리 원유편을 부르네.'-<신증동국여지승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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