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자풍서당' 이름을 짓다, 정구

2011.05.26 16:27:04

조혁연 대기자

영동군 양강면 두평리 561번지에 자풍서당(資風書堂)이라는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중앙에 대청이 자리잡고 있어 시원스러움이 느껴지는 18세기 건물이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유교건축물 내에 불탑이 자리하고 있는 점이다.

영동군 향토유적 제8호로, 공식 명칭은 '두평리 5층석탑'이다. 1989년 지하에서 발굴된 이 석탑은 신라말~고려 초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본래 이곳에는 풍곡사(風谷寺)라는 사찰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억불숭유 정책에 따라 사찰이 폐지되고 유교 건축물이 세워졌다. 종교간에도 역전과 반전이 있었던 셈이다.

자풍서당의 관리가 잘 안 되어 있는 모양이다. 주변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닭까지 잡아 주고 또 건물 아궁이 주변이 불에 끄슬려 있다고 최근 언론에 보도됐다.

자풍서당할 때의 '자풍'은 자법정풍(資法正風)에서 딴온 말로, 광해군 65년(1614) 정구(鄭逑)라는 인물이 작명했다. '資'는 명사로 쓰이면 재물을 뜻하지만, 술어로 사용되면 '헤아리다', '바탕으로 하다'는 뜻을 지닌다.

그렇다면 자법정풍은 '법을 바탕으로 해서 풍속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 된다. 조선시대 예학을 논할 때 좌우에 나란히 위치하는 인물이 김장생과 정구다. 김장생의 '가례집람('家禮輯覽)과 정구의 '오선생예설분류'(五先生禮說分類)는 지금도 조선시대 최고의 예서(禮書)로 꼽히고 있다.

정구는 경상도 성주 사람이다. 이런 그가 왜 영동군 양강면을 방문, '자풍'이라는 서당 이름을 작명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실록에 이를 유추할 수 내용이 등장한다.

1613년(광해군 5) 대북파가 소북파, 영창대군을 몰아내는 계축옥사가 일어났다. 영창대군은 서인으로 강등돼 강화도에 유배됐고, 얼마후 강화부사 정항(鄭沆)에 의해 증살형을 당했다. 증살형은 방에 불을 때 그 고온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말한다. 정구가 이 소식을 듣고 상소를 위해 한양으로 향했으나 중도에 병이 났다.

'밤낮으로 부심하다가 만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기운을 내어 길을 나서 걸음걸음 엎어지면서 지금 영동(永同)에 이르렀습니다마는, 더운 날씨에 몸을 상하여 온갖 병이 기승을 부리므로 정신도 아찔하고 기력도 야위어서 길가에 누워 있습니다. 그러나 나을 가망이 없으니 이런 낭패가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대궐을 바라보니 마음만 달려갑니다.'-<광해군일기>

인용문의 '영동'이라는 지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상도 성주-김천-충북 황간-영동 길은 조선시대 9대 대로는 아니다. 그러나 추풍령을 통과하는 이 길은 김천 아래 쪽에서 보면 한양으로 가는 첩로(지름길)이다. 정황상 정구도 이 길을 통해 한양을 자주 오르내렸고, 그 과정에서 영동 자풍서당을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정구는 영동 뿐만 아니라 우리고장 충주와도 인연을 맺고 있다. 그는 충주부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 까닭으로 그의 위패가 음성 삼성면 용성리 운곡서원(충북도 문화재자료 제 11호)에 봉안돼 있다. 당시 음성은 충주목 관할이었다. 운곡서원은 규모는 작으나 간결하고 소박하게 지어졌다. 서원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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