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이 억울함을 풀어주다, 충주현감 이치

2011.07.07 17:51:35

조혁연 대기자

'사신은 논한다. 이 옥사에 연루되어 주륙당하거나 귀양간 자가 무려 40∼50인에 달하여 충주(忠州) 전체가 온통 비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 이홍남이 꾸며낸 일이었다. 그런데 이홍남이 자손을 둔 것이 어찌 천도(天道)이겠는가.'-<명종실록>

이홍윤 역모사건은 16세기 중반 우리지역 충주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외형상 이 사건은 곧 종결되는가 싶었으나 또 다른 사건의 발단이 됐다. 그것의 출발점은 역시 이홍윤 사건이었다.

명종은 이홍윤 사건 후 이른바 인사를 단행했다. 이때 유신현 현감으로 부임한 인물이 이치(李致·1504∼1550)다. 그 직전 연좌제에 따라 행정적 강등과 이름이 바뀌는 조치가 단행됐다.

'충청도(忠淸道)를 고쳐 청홍도(淸洪道)로 만들고, 충주(忠州)를 강등시켜 유신현(維新縣)으로 만들었다. 이기(李초두변+己 기)를 의정부 영의정으로, 이해(李瀣)를 청홍도 관찰사로, 이치(李致)를 유신 현감으로 삼았다.'-<〃>

이와 관련, 당시 사관이 실록 말미에 이례적으로 '사신은 논한다. 다시 이기를 의정부 영의정으로 삼았다. 옥사가 한번씩 이루어질 적마다 이기 등의 직급이 올라가니 아, 슬프도다'라는 내용의 사론(史論)을 적었다.

사관이 영의정 이기만을 특정해 비난한 것은 분명 당시의 정가 분위기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당시 이치와 이기는 정치적인 앙숙 관계에 있었다. 이치는 을사사화를 일으킨 이기를 양사(사헌부+사간원)와 더불어 탄핵하여 파직시켰고, 또 외척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치가 부임한 직후 유신현(충주)에서 이른바 '최하손 고변사건'이 일어났다. 최하손은 출세할 목적으로 충주지역 향회(鄕會)의 명단을 훔쳤고, 그리고 그것을 역모와 관련된 명단이라고 무고를 하려다 발각됐다. 향회는 지방에 거주하는 사족(士族)의 모임체 정도가 된다.

이치(李致)가 당시 청홍도 관찰사인 이해(李瀣·1496∼1550)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이후 최하손을 대장(大杖)으로 고문하는 과정에서 그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기, 윤원형 등의 소윤 일파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특진관 윤원형이 아뢰기를, (…) 회문(回文·향회 명단 지칭)에 이름이 들어 있는 자의 자제가 모함하는 호소에 따라 고변하려는 자를 도망한 사민(徙民)이라 하여 곤장을 쳐 죽여서 입을 봉하였으니, 어찌 이렇게 한심한 일이 있겠습니까.-<〃>

1547년(명종 2) 이치는 결국 이기의 사주를 받은 이무강(李無彊)에 의하여 대역죄로 몰려 투옥됐다가 매를 심하게 맞아 사망했다. 이른바 장살(杖殺)이다. 그 모습을 박동량이 지은 '기재잡기'(寄齋雜記)라는 야서는 '고문을 당하여 도중에서 죽었는데 때가 마침 한 여름이어서 시체가 불어터졌다'라고 적었다. 훗날 율곡 이이가 억울하게 죽은 그를 위해 묘명을 직접 썼다.

'/…/ 정의에는 풍부하고 간사함에 죽었으니(富于正殞于邪) / 하늘이 어찌 이리도 박하게 하였는고(天胡薄耶) /…/ 삶은 애초에 욕되지 않음이 없으며(生未始非辱) / 죽음은 애초에 영화롭지 않음이 없다(死未始非榮) / 한 조각 높은 돌은(一片嵌石) / 천고에 향기를 머무르리라(千古留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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