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서 동굴 설화까지, 충북의 용

2012.01.15 18:12:00

조혁연 대기자

중국의 용은 은나라, 그러니까 신석기시대부터 등장한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늦은 청동기 시대부터 용 문화가 관찰되고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에는 국보 제 147호인 천전리 각석이 존재하고 있다.

선으로 새긴 그림들 중에는 4개의 다리와 2개의 지느러미를 가진 몸통이 긴 동물이 그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우리나라 최초의 용그림으로 보고 있다.

용 문양이나 장식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은 아무대로 사찰이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사연이 존재하고 있다. 불교 건축물에 용 문양과 장식이 적극적으로 등장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부터다.

사명, 영규대사 등에서 보듯 조선의 승려들은 북인과 합세해 임진왜란 때 전공을 많이 올렸다. 임란이 끝난 후 불교에 대한 탄압이 크게 완화됐다. 그러자 불교계는 이때부터 백성들을 절로 불러들이기 위해 민간에 퍼져있던 용 사상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기 시작했다.

불교 건축물의 각종 용 조각과 용 그림은 바로 백성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계산된 상징기호였다. 따라서 고려 건축물인 부석사 무량수전과 유교건물인 향교와 서원에는 용장식이 관찰되지 않는다.

국보 55호인 팔상전은 임란후인 인조(17세기) 때 재건된 목탑이다. 이 팔상전을 잘 살펴보면 용그림이 건물 외곽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힘차게 그려져 있다.

제천 월악산 신륵사에는 앞쪽에는 용머리, 후면에는 용꼬리 모습을 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흑룡이 아닌, 4개 발톱을 가진 황룡이 배를 짊어지고 헤엄치고 있는 가운데 선두와 선미에서 인로왕보살과 지방보살이 천의를 휘날리며 장대로 노를 젓고 있다.

이런 모습을 '극락을 향해 항해한다'는 뜻에서 '용(龍)' 자를 쓴 '반야용선'이라고 한다. 이밖의 용 조각과 관련이 있는 도내 문화재로는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제41호)과 충주 정토사지 법경대사 탑비(보물 제 17호) 등이 있다.

용두사지 철당간 비문에는 '그 모양은 하늘에 학이 날고, 용이 약동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당간은 마군을 항복시키는 철장이요, 도적을 물리치는 아름다운 깃발이다'라는 내용이 돋을새김 돼 있다.

법경대사 탑비의 이수는 용조각이 매우 힘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수'는 이룡, 즉 뿔 없는 용의 머리라는 뜻이다. 도내에는 용과 관련된 지명도 매우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청원군 문의면의 큰 용굴과 작은 용굴이 있다.

유명한 용굴이었는지 조선시대 세종실록지지리,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 3개 지리지에 모두 등장한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석혈이 있는데 속칭 용이 나간 곳이라 한다.'-<세종실록지리지>

이밖에 여지도서에는 '용혈이 현의 동쪽 4리에 있다. 들어갈 때는 반드시 횃불의 들고 들어가야 하며, 아래에는 큰 물이 있어 불을 던지면 불꽃이 깜빡거리다 꺼진다'라고 쓰여있다.

이때의 용혈은 '큰 용굴'을 지칭하는 것으로, 굉장히 큰 석회암 동굴이었으나 지금은 개발에 밀려 존재하지 않는다. 작은 용굴은 아직 존재하고 있다. 청남대 진입로에서 만나는 것은 '작은 용굴'로, 들어갈 때를 기준으로 할 때 왼쪽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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