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엔 고향 가십니까?

2013.02.05 16:31:42

"어머님, 올해 설에는 고향에 못갑니다."

청원군 소재 한 중소업체 중견간부 K모씨의 볼멘소리다. K씨가 고향엘 못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체불임금 때문이다.

**체불임금에 고개숙인 근로자

얼마 전 임금을 받지 못해 자신이 일했던 건설업체의 화물차량을 끌고 간 S모(40·청주)씨가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 조사 결과, S씨는 퇴사 후에도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자 차량을 끌고 간 뒤 업주에게 임금 지급을 요구했다고 한다.

설 명절 떡값은커녕 월급조차 제대로 못 받게 된 이들에게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뵙는 귀성은 그저 먼 나라의 전설일 뿐이다.

이들이 바라는 떡값은 힘센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몇 천만원대 그런 떡값이 아니다.

명절을 그냥 보내기가 섭섭해서 봉투에 몇 만원씩 넣어서 나누어 주는 수준의 떡값일 뿐이다. 그런 떡값조차도 올해는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보너스는 고사하고 몇 달 동안 임금조차 받지 못해 빈손으로 고향을 찾거나, 아예 귀향을 포기하고 있는 근로자들이 적잖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현황을 보면 현주소를 가늠케 한다. 지난 해 말 현재 전국적으로 발생한 체불임금은 1조1천772억 원으로 전년 1조874억 보다 8.2% 증가했다.

청주지청과 충주지청 관내에서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327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체불임금은 12억원 정도였다. 한 명당 370여 만원을 받지 못한 셈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명절 때 만 되면 체불임금 해소대책 추진 기간으로 정하고 근로자 보호를 위한 각종 체불임금 해소책 마련에 들썩인다. 올해도 어김없이 설 명절을 앞두고 8일까지 해소대책 기간을 설정했다.

해마다 법석을 떨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해소 대책이 대부분 체불임금 청산에 맞춰져 있고 처벌 수준도 약해 예방에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설을 앞둔 서민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에겐 남 얘기일 뿐이다.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이 지난달 31일 징역 4년 선고와 함께 법정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는 최 회장이 선물옵션 투자를 위해 회삿돈 465억원을 빼돌려 펀드 1차 출자 및 송금을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설을 앞두고 이를 지켜 본 없는 자들은 허탈해 했다.

서민들을 더 화나게 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사회적인 논란에도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는 점이다. 특사 대상자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 대통령의 최측근을 포함시켰다. 이들은 이권청탁과 관련해 거액의 금품을 받아 챙긴 장본인들이다.

옛 중국의 역사서는 통치 집단 내부의 분열과 이반을 얘기할 때 와해(瓦解)라는 단어를 썼다. 그리고 백성들의 민심동요와 이반을 얘기할 때는 토붕(土崩)이라는 말을 썼다. 당상(堂上)에서의 편 가르기나 힘겨루기로 통치 권력이 무력화되는 현상을 기왓장이 깨지는 것에 비유하고 민심이 흩어져 이반하는 현상을 흙으로 쌓은 토대가 무너지는 것에 비유했다.

**위정자들 민심 제대로 챙겨야

"어머님, 올 설에는 고향에 못갑니다"라는 호소는 설을 앞둔 우리 서민들의 민생과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정쇄신도 좋고 국민을 위한 정책 마련도 좋지만 민심을 제대로 읽는데서 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와해보다 더 무섭다는 토붕을 막는 지름길이다. 위정자들은 사회적 양극화에 따른 설 민심을 제대로 살폈으면 한다.

근로자에게 임금은 자신뿐 아니라 딸린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한 생존수단이다. 임금을 주지 않는 행위는 한 가정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범죄와 다를 바 없다.

설 때만이 아닌 강력한 감독과 행정지도, 확실한 지원책이 필요한 이유다.

2013년 계사년 까치설날엔 온 세상 사람이 더 큰 함박웃음을 지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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