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만들기 열풍에 묻다

2013.02.12 19:04:56

지자체마다 지역 특성을 극대화한 '길' 만들기 열풍이 대단하다.

얼마 전 청주시는 시민들의 쉼터인 우암산에 걷기 길 공사를 마무리했다.

우암산터널에서 국립청주박물관, 청주향교, 삼일공원으로 이어지는 4.7km 구간이다. 이 우암산 걷기길 1구간 사업 마무리로 2구간인 우암산순환도로(3.7km)와 합쳐 8.4km 길이의 걷기길이 탄생한 셈이다.

오는 23일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2013 새봄맞이 청주·청원 한마음 우암산 걷기길' 걷기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괴산군도 '산막이 옛길'로 성공사례를 만든데 이어 또 하나의 대박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문화와 자연을 어우를 길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우리사회의 트렌드 된 걷기

'걷기'는 이제 우리 사회의 트렌드가 됐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10대 히트상품의 하나로 '도보체험관광'을 꼽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주도 '올레길'의 경제적 효과가 연간 200억원에 이른다.

충북의 명소로 자리매김 한 괴산 산막이 옛길은 지난해에만 130만명이 찾았다. 이 길을 통해 150억원 이상의 경제 유발 효과를 거뒀다고 괴산군은 자평한다.

성공사례를 모델로 지자체마다 지역 특성을 극대화한 길 만들기에 동참하고 나섰다. 이를 위해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된다.

둘레 길은 산업화를 선도했던 도로와는 딴판이다. 산을 깎고, 숲을 까뭉개고, 마을을 두동강 내서 만든 길이 아니다. 곧고 넓은, 속도가 경쟁력인 길은 더욱 아니다. 지금은 사라진 마실 가던 길, 땔나무 하러 가던 길, 장 보러 가던 길, 학교 가던 길 등이 인적이 끊기면서 푸서리 길이 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길 이름도 정겨움이 넘쳐난다. 옛사람이 걸었던 작은 길을 찾아내 먼지를 쓸어내고 온전히 사람만 걷는 친환경 길이다.

고을과 산하를 들추고 옛 얘기를 찾아내 스토리텔링의 표지판까지 설치하고 유적들을 복원해 놓아 친절한 길동무가 되고 있다.

옛 길 복원은 걷기의 재발견이다. 걷기 대회, 걷기 여행, 걷기 학회, 걷기 운동본부 등 걷기 열풍과 함께 생경한 용어들도 생겨났다. 둘레길 등장으로 걷는 인구도 부쩍 늘었다. 지역의 명품 둘레길을 마치 전문 산악인이 에베레스트를 오르듯 순서를 정해서 정복하는 마니아까지 생겨났다.

전국의 둘레길마다 걷기 대열에 인파로 북적인다. 둘레길 걷기가 트렌드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걷기 열풍의 배경은 단연 건강이다. 걷기는 함께여도 좋지만 정신건강과 내면의 카타르시스를 원한다면 혼자가 제 맛이다. 혼자 걷다 보면 사색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사색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보이지 않던 것, 지나쳐 버렸던 과거의 일들을 새롭게 볼 수 있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치게 했던 다툼도 하잘 것 없는 일이 되고, 그 자리에 너그러움이 자리한다.

미움, 슬픔, 증오, 분노의 감정도 눈 녹듯 사라지고 용서와 후회와 참회만 남는다. 걷기는 비움이고 세파에 상처 난 마음 곳곳을 치유하는 카타르시스 행위다. 걷기는 자기 수양이다. 걷는 발자국마다 비움이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길은 중요하고, 지자체들이 시민들을 배려하는 행정은 매우 고무적이다.

지자체, 탐방객 눈높이 맞춰야

하지만 타 지자체가 한다고 모방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제주도 올레 길을 능가하는 명소가 될 수 있게끔 알차게 가꿔야 한다. 둘레길 조성과정에서 자연훼손이 있어서는 안 된다. 둘레길이 명성을 얻으려면 콘텐츠가 충실한 자연 그대로의 프로그램 개발도 필요하다. 길 조성이후 체계적인 사후관리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제주 올레길 40대 여성 살해사건을 교훈삼아 걷는 길의 안전에도 투자해야 한다. 둘레 길을 걷는 사람들도 스스로 안전을 지켜야 한다.

마을 주변을 따라 난 둘레 길에선 탐방객이 버린 쓰레기와 소음 문제가 골칫거리다.

걷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생명이라는 것을 알면 걷는 길을 어떻게 관리하고, 또 어떻게 여행해야 할지 답이 나온다.

많은 문인들은 삶의 철학이 스며있는 길을 예찬 했다. 신경림의 '길'은 자신이 걸어온 인생 길을 성찰함과 동시에 앞으로 걸어갈 길을 일깨워 준다.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은 해탈 즉 깨달음의 경지를 웅변한다.

새 출발의 계절이다. 숲으로 난 둘레 길을 따라 반성과 소망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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