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꼬마의 도미…108년만의 귀거래사

독립운동가 정순만의 증손 모이씨
생가있는 청원 옥산찾아 "조부대신 제가 왔다"
본보 보도로 우연찮게 증조부 생가 존재 확인
미국으로 돌아가 "내 혈통 더 알고 싶다" 메일

2013.05.09 19:54:47

한국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이승만(李承晩), 정순만(鄭淳萬), 박용만(朴容萬) 은 '삼만'으로 불리운다.

세 사람은 출신지는 각각 다르나 일정기간 재미 동포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중 충북 청원 옥산면 덕촌리 출신의 정순만은 지난 1911년 불의의 사고로 러시아에서 사망했다.

그에 앞서 정순만은 1905년 독립운동에 전력투구하기 위해 만주 용정으로 망명하면서 삼만의 한 명인 박용만에게 자기아들 양필(당시 12세)의 뒷날을 부탁한다.

러쎌 모이 씨의 조부모 정양필과 이화숙이 1920년 미국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의 모습이다. 두 사람 모두 독립운동가로도 활약했다.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유한양행으로 유명한 유일한 박사이다.

그렇게 이역에서 성장한 정양필은 대학 졸업 후 기업을 차리는 등 경제적으로도 성공한다. 그의 친손자 러썰 모이(Russel Moy) 씨가 조부가 도미한 후 108년 만에 증조부(정순만)의 고향 청원 옥산과 관련 자료가 집필된 충북대를 찾았다.

모이 씨의 증조부 고향 방문은 사전에 전혀 계획되지 않은 것으로, 말 그대로 극적으로 이뤄졌다. 모이 씨는 외할머니 이화숙(정양필 부인)의 체취를 살펴보기 위해 지난 3일 서울 이화여고를 찾았다.

이화숙은 이화여전 제 1회 졸업생이자 김규식을 도와 독립운동을 한 인물로, 지난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이날 당시 이화여고에서는 충북대 미생물학과를 정년 퇴임한 이영남 전교수가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전교수와 모이 씨 일행 사이에는 영어로 대화가 이뤄졌고, 이때 '독립운동가', '정순만', '충북' 등의 단어가 오갔다.

미생물학자 출신으로 정순만을 전혀 모르고 있던 이 전 교수는 즉석에서 정순만을 열쇠말(키워드)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 결과 △독립운동가이고 △충북 청원이 고향이며 △그 며칠전에 정순만과 관련된 자료집이 출간됐다는 점 등을 알아내고 관련 내용을 모이 씨에게 알려줬다.

지난 6일 충북대를 찾은 러쎌 모이 씨 일행이다, 오른쪽부터 부인, 두 아들, 모이씨, 정순만의 손부, 증손녀 등이다.

마침 당시 출간 소식을 보도한 충북일보 기사(4월 9일자)에는 자료집을 집필한 충북대 박걸순(사학과) 교수의 휴대폰 번호가 실려 있었다.

그 직후 생면부지의 세 사람 사이에는 본보에 실린 전화번호를 매개로 대화가 오갔고, 모이 씨는 그 과정에서 증조부의 고향이 '충북 청원 옥산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모이 씨가 지난 6일 두 아들과 중국계 부인 등을 이끌고 증조부의 생가가 있는 옥산면 독촌리와 하동정씨 문중을 찾아 "조부대신 제가 왔다"며 감회에 젖었다.

그리고 집필자 박걸순 교수의 연구공간을 차례로 방문, S자로 굽은 충북대 소나무 옆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박교수에게 증조부 정순만 자료집을 영어로도 번역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에 돌아가서 '나는 다시 한국을 방문하고 싶고 나의 한국 혈통에 대해 보다 많이 알고 싶다'(I hope to Korea and learn about my Korean ancestry)라는 내용을 영문 메일로 보내왔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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