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동문은 왜 절필하고 귀농했을까

유종호 평론가 분석
세간에 거론되는 필화 후유증 등은 '오답'
단양 귀농경위 작품 속에 정확히 내재해
도시 지식인에 환멸 전원 노동가치 추구

2013.09.30 17:47:57

고 신동문(辛東門·1928~1993·사진) 시인의 절필은 정치적 필화사건과는 무관한, '스노비즘'(snobbism)에 대한 반발 의식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스노비즘은 고상한 체하는 속물근성 또는 출신이나 학식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영국작가 새커리 '스노브 독본'이라는 소설에서 유래했다.

제 1회 신동문 문학제가 사단법인 딩아돌아문예원(이사장 박영수) 주최로 지난 26일 청주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다.

이날 문학제에서는 대상 백민정(전남여상) 등 입상자 시상과 함께 이화여대 유종호 명예교수가 '신동문 시세계'를 주제로 특강을 해 주목을 받았다.

지금까지 고 신 시인의 단양 귀농과 관련해서는 "필화사건으로 인한 후유증이 주된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이 있어왔다.

신동문의 1960~90년대 주요 행적

실제 신 시인은 △경향신문 독자투고건(1964년) △창작과 비평에 리영희의 글 게재건(1975년) △신동엽 유고시집건(〃) 등으로 인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심문을 받은 바 있다.(표 참조)

그러나 유 교수는 "신 시인의 절필에 대해서는 외압설 등 이런저런 얘기가 돌고 있으나 가장 확실한 경위는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며 "주된 이유는 귀농 의지였다"고 밝혔다.

신 시인은 1962년의 「'아니다'의 酒酊」에서 이미 도시 지식인의 지적 허용심(스노비즘)을 비판하고 있다.

'이런 것이 아니다 / 이런 것이 아니다 / 쇼팽 / 베토벤 / 혹은 카프카, 샤르트르 / 또 그 누구누구 / 너희들 다 그런 것이 아니다 / 싼 술 몇 잔의 / 주정 속에선 /아니다 아니다의 / 노래라도 하지만 /…/'

신 시인의 이런 反스노비즘은 시 「이 해의 雜念」(1962년)과「散文 또는 生産」(1963년)을 거치면서 귀농 의지로 발전했다.

그는 전자의 시에서 '어디 깊은 외딴 산골 / 山寺 같은 델 찾아 / 보리 말이나 짊어지고 가 / 한 대여섯 달 또 몇 해 / 입도 떼잖고 생각도 말고 /…/'라고 적었다.

그리고 후자의 산문에서는 '나는 요새 이상한 생각이 자꾸만 나서 큰일이다. 밤에 혼자서 시를 쓴다든가 엘리엇을 읽는다든가 할 것이 아니라 어디 시골이나 가서 한 열 평 밭뙈기라도 장만하여, 남들이 잘 안 하는 미나리 농사나 왕골 농사를 개량 재배해서 미끈한 줄거리로 자라나게 한다든가…'라고 골똘했다.

그는 1964년 경향신문 독자투고건으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됐다가 풀려났으나 곧바로 귀농하지 않고, 대신 그의 대표작인 「내 노동으로」(1967년)를 썼다.

그는 이때 스노비즘의 상징인, 하얀 얼굴에 가느나란 손목을 지닌 도시 지식인에 대한 염증을 최고조로 나타냈다.

'이 야위고 흰 / 손가락은 / 다 무엇인가 / 제 맛도 모르면서 / 밤새워 마시는 / 그 술버릇은 / 다 무엇인가 / 그리고 / 친구여 / 모두가 모두 / 창백한 얼굴로 명동에 모여드는 친구여 / 당신을 만나는 / 씁쓸한 이 습성은 / 다 무엇인가 /…/'

1967년에 쓰여진 시「내 노동으로」를 끝으로 그는 사실상 절필했다. 그는 서울에서도 이미 상당기간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가 1975년 중앙정보부에 두 차례 연행을 당한 그 해에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로 귀농했다.

유 평론가는 그의 이런 인생 궤적에 대해 "절필은 귀농 구상과 노동 실천의 필연적인 결과였다"며 "그러나 그것은 한 시적 재능의 실종을 수반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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