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인의 존재감 각인시키려면

2014.01.21 17:45:41

한국 정치사에서 충청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선거에선 '승패의 감별사', 정국에선 조정자 역할을 하며 끊임없이 정치적 역량을 높여왔다.

한때 '충청도 핫바지론'이 정치판을 달구기도 했다. 충청권 핫바지는 김윤환 당시 민주자유당 의원(작고)이 1995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말에서 나왔다. 김 전 의원은 김종필씨가 자민련 창당에 나섰을 즈음 그를 빗대어 "충청도 사람이 당을 새로 만든다는데 충청도 사람들이 핫바지냐"며 대수롭잖게 반응했다. 그걸 갖고 충청권의 한 신문이 "충청도 사람을 핫바지라고 했다"고 왜곡 보도했다. 자민련은 "충청도가 핫바지란다"는 식으로 충청도민의 화를 잔뜩 돋우었다.

정치 변방에서 중심으로

계산은 적중해 그해 지방선거에서 자민련은 충청권을 휩쓸었다. 그 핫바지론의 위력은 이듬해 15대 총선까지 이어져 자민련 의석이 50석이나 됐다. 근 반세기 동안 내로라하는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대개 그런 하치(下値) 지략 따위를 밑천삼아 억지에 가까운 집념으로 오래 권세를 누렸다. 그들은 '망국적 지역주의 청산'을 외쳐대면서 지능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해 거기에 절대적으로 의지했다.

영호남과 수도권, 강원권에서조차 밀리는 기타지역에 속한다는 혹평도 받기도 했다.

2인자만 득실거리는 충청도. 사실 과거 충청은 한국 정치의 변방이었다. 충청이 한국 정치의 주류로 단숨에 부상할 만한 계기가 없었다는 얘기다.

충청권 기반의 한계인가. 정말 인재가 없는 것일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인구증가로 충청의 위상강화를 견인하는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한국의 정치 지형을 바꿀 작지만 의미심장한 변화는 지난 5월 감지됐다. 조선시대 이후 처음으로 충청의 인구가 호남을 앞지른 것이다.

인구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확대되는 양상이다. 현재 호남은 인구가 정체상태지만 충청은 매달 평균 3천명씩 증가하고 있다. 차기 대선이 치러지는 2017년이면 충청권과 호남의 인구 격차가 수십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된다.

뿐만 아니다. 충청지역 인사들이 중앙무대에서 '파워업' 신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자질과 경쟁력을 갖춘 충청권 인사들이 사회 곳곳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국내를 넘어 국외에서도 충청인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그렇다. 반 총장은 차기 대선주자 유력도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한다. 입법·행정·사법부의 주요 요직에 충청도 출신이 대거 포진하며 대한민국의 신 주류로 떠올랐다.

입법부의 경우 사상 첫 국회의장·부의장 동시 배출이라는 영광의 금자탑을 쌓았다. 국회내 충청권 인사의 존재감 역시 배가 됐다. 이번 국회 6선 이상 의원의 과반 수가 충청 출신으로 구성되며 그 어느 때보다 입김이 세졌다. 무소속 강창희 의장을 비롯해 새누리당 서청원·이인제 의원과 민주당 이해찬 의원 등이 주인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자문그룹으로 알려진 '7인회'의 맏형 격인 김용환 전 장관을 비롯해 충북지사를 지낸 정우택 최고위원, 충남도백 출신의 이완구 의원 등이 당내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하며 충청의 위상을 한층 강화시키고 있다. 이시종 충북지사와 안희정 충남지사도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 중량감이 묻어난다.

정부내 충청권 인사들의 활약도 대단하다. 우선 박근혜정부의 밑그림을 충청권 인사들이 그리고 있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지역발전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이원종 전 충북지사가,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심대평 전 충남지사가 발탁돼 활동하고 있다.

정부의 경제 브레인에도 충청 출신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경제부총리부터 기재부, 국세청의 요직을 점령한 것이다. 우선 국내 경제 파트의 헤드쿼터인 현오석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청주 출신이다.

사법부에서 안창호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비롯해 김진모·윤갑근·이금로 검사장 등이 요직을 맡아 맹활약 중이다.

소신있는 지역인재 키워야

충청이 역대 정국에서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왔다. 이젠 영·호남 대립의 종지부를 찍고, 중원이 중심이 돼 하나 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의 변방을 넘어 중심으로 도약하고 있는 충청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인재가 없다고 걱정하는 많은 충청인들. 왜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는가. 이제는 지역의 큰 어른과 인재부터 먼저 살폈으면 한다.

그들을 귀하게 여기며 가급적 많은 기회를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충청인의 존재감을 각인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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