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령'인가 '토령'인가, 국사편찬위원회 혼동

2014.03.06 15:33:14

조혁연 대기자

세조의 어가가 우리고장 청주목 초수리(초정약수)에 당도한 것은 1464년 2월 21일이었다. 세조의 어가는 이날 진천~초수리 구간을 단 하룻만에 이동했다. 따라서 세조의 어가가 초수리에 도착한 시간을 늦은 오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조의 어가를 맞은 당시 청주목사는 고태필(高台弼)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1465년 청주목사가 되어 정사를 엄정히 집행, 아전들은 그를 두려워 했으나 백성들은 편안히 여겼다.

'충청도 관찰사 김진지가 글로써 아뢰기를, "청주 목사 고태필·온양 군사 이신효·임천 군사 박휘는 부지런하고 정성스러우며 상세하고 공명하여, 관리는 두려워하고 백성은 편안하니, 승직(陞職)할 만하고…"'-<세조실록 11년 2월 22일자>

번역상 문제가 된 세조실록의 원문 이미지.

초수리에 도착한 세조가 다음날 한 일은 사냥과 천변에서 가진 작은 술자리였다. '임금이 위사(衛士)로 하여금 토령(吐嶺)에서 몰이하게 하고, 어가를 천변(川邊)에 머물러 작은 술자리를 베풀었다.'-<세조실록 10년 2월 22일>

조선왕조실록은 우리민족의 기록문화 꽃으로, 국보 제 151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돼 있다. 이런 조선왕조실록은 국사편찬위원회(이하 국편)에 의해 한글로 완역돼 있어, 일반인도 충분히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 인용한 부분은 번역상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국편은 위 문장을 번역하면서 제목은 '위사로 하여금 면령에서 몰이하게 하고 천변에서 작은 술자리를 베풀다'라고 달았다.

반면 이 부분에 해당하는 번역문은 '上令衛士驅兎嶺 駕駐川邊 設小酌'라고 적었다. 분명히 통일돼 있어여 할 내용이 '토령(吐嶺)', '면령', '兎嶺'으로 각각 따로 놀고 있다. '兎嶺'은 '토령'으로 읽힌다.

이중 두 단어는 분명히 틀린 표현일 것이다. 원문(사진 참조)을 살펴본 결과, '免嶺'(면령)이 바른 표현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편은 국내 최고의 국사연구기관으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주도하고 있다. 그곳에서 이런 실수가 나왔다.

우리고장 시각으로 봤을 때 '면령'의 지금에 어느 지역인가는 대단한 흥미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글학회에서 펴낸 '한국지명총람 충북편'을 기준으로 할 경우 초정리 부근의 청원 북이면에는 32개, 지금의 내수읍에는 40개의 고개 이름이 등장한다.

그리고 초정리에는 솔미고개와 초정고개가 존재한다. 총람은 솔미고개에 대해 '초정약수에서 북이면 호명리로 가는 고개', 초정고개에 대해서는 '초정약수에서 증평읍 남차리로 가는 고개'라고 적었다.

어원상 두 고개 이름에서는 '면령'으로 추정할 근거가 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정황상 초정약수 뒷쪽의 가장 높고 큰 고개인 '이티고개'를 생각할 수 있으나 역시 '면령'으로는 잘 연결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면령의 규명은 앞으로 지역 지명학자들의 커다란 숙제가 되고 있다.

다음은 그날 작은 술자리가 벌어진 '천변'이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이날 세조의 어가가 초정약수를 떠나 청주읍성으로 가는 도중에 천변에서 잠시 멈춘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지금의 내수읍을 흐르는 석화천을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역시 규명 대상이다. 증평 보청천은 훨씬 북쭉이기 때문에 고려 대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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