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봄날은 왔건만…

2014.03.11 15:31:46

찬란한 봄날이다. 봄의 존재방식은 '그리움'이며 '기다림'이다. 봄의 존재양상은 '밝음' '환함'이고 또한 그것들을 '내다봄'이다.

봄의 생리는 갈증을 '풀어냄'이 아니다. '일어섬'이다. '살아남'의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한데 봄기운이 건조하다. 봄을 맞은 서민들의 삶이 팍팍하다. 곳곳에서 희망보다 좌절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살아감이 곧 위험이기에 그러하다.

사회 곳곳서 좌절의 경고음

지난달 26일 생활고를 비관,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현금 70만원이 든 봉투와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란 메모를 남긴 채 방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 송파구 세 모녀의 자살 사건이다.

일가족 동반자살은 청주에서도 있었다.

지난달 10일 청주시 흥덕구 성화동의 한 빌라 4층에서 이 빌라 주인(여)과 두 딸이 가스에 중독돼 모두 숨졌다. 현장에는 타다 만 번개탄 5장이 발견됐으며 유서는 없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S씨가 최근 가족들이 연이어 좋지 않은 일을 겪어 심적으로 상당히 힘들어 했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경찰은 당시 막내딸이 직접 번개탄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 이들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

2012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33.3명이 자살했다. 무려 1만4천160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쟁터나 다름없다. 자살의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이 가운데 경제적인 어려움과 질병이 가장 많다.

정작 죄송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동반 자살을 해야 할 만큼 힘든 세월을 눈치 채지 못했거나 알고 있어도 무심했던 우리들이다. 국가와 지자체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이들은 몸이 아픈 상태로 수입이 끊겼지만, 국가나 자치단체, 이웃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사회안전망의 외곽,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

가계부채도 큰 문제다. 지난해 말 기준 기어이 1천조 원을 넘어 1천21조 원을 기록했다. 가계부채가 급증한데는 장기간 경기침체로 멈춰버린 가계소득에 실업과 자영업 창업 실패가 증가하면서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동산시장 침체와 전·월세 급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급기야,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다. 가계부채 대책의 골자는 가처분소득의 163.8%에 달하는 부채비율을 2017년까지 5%포인트 낮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계 대출을 장기·고정금리·비거치식 분할상환 구조로 바꿔 상환부담을 덜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 대책이 부채 위험성을 완화시킬 지는 미지수다.

젊은층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더욱 커져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건겅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2일 밝힌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2009~2013년) 강박장애(F42, Obsessive-compulsive disorder)진료환자 분석 결과, 2013년 기준으로 20대가 전체 환자의 24%, 30대가 21.2%를 차지했다.

국내 강박장애 환자의 수가 2009년 약 2만1천명에서 2013년 약 2만4천명으로 4년간 3천여 명(13.1%)증가한 가운데, 연령대 비교에서도 2030 비중이 높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쟁에서 뒤쳐질 것 같은 두려움'이 20대와 30대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소외계층을 위한 안전망을 확실히 구축해 '사회적 타살'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다른 대안은 경제 활성화다.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해 가계소득을 늘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나아가 기존의 방안이 원활하게 추진되도록 모두가 총력을 기울여야할 때다.

위정자가 답해야 할 때다

한데 여야 정치권은 6·4지방선거 필승에만 혈안이 돼 있다. 행정도 정치에 휘둘리고 있는 모양새다.

"이 난국을 어쩌시렵니까?" 서민들이 위정자들에게 묻고 있다.

이젠 위정자들이 답해야 한다. 특이하고 화려한 화법으로가 아닌 일관된 정책, 강력한 의지, 신뢰를 담보로 한 행정력으로 말이다.

농부가 가을에 수확을 기대하며 씨앗을 뿌리듯이 우리네 모두가 희망의 꽃씨를 가슴속에 심는 그런 찬란한 봄날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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