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도 철학도 없는 지역 정치판

2014.05.06 15:28:21

비례대표 1번을 보면 정당의 이념과 지향점을 가늠할 수 있다. 과거엔 유력 인사나 당의 원로에게 돌아갔던 1번이 요즘은 특별한 상징성이 있는 여성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는 정당을 매개로 해 정당이 작성한 후보자 명부에 대해 투표하는 것을 말한다. 다수대표제·소수대표제가 불러오는 부당한 결과를 바로잡고자 고안된 제도로 각 정당의 지지도에 비례해 의원 의석을 배분한다.

속과 겉 다른 비례대표제

우리나라 선거에서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것은 1963년 11월 26일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다. 당시 선거 사상 최초로 선거구를 지역구와 전국구로 나눠 전국구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방식은 1인 1표제. 정당 후보자 총 득표율을 토대로 의석을 할당했다. 비례대표제가 변화한 것은 2002년 지방선거부터다. 2001년 헌법재판소는 '1인 1표제가 직접·평등선거에 위배된다'는 위헌 결정을 내렸다. 1인 1표제 아래에서 비례대표제는 정당 후보 지지가 엇갈리는 유권자의 선택권 절반을 박탈하고 무소속 후보에게 투표하는 유권자를 차별, 평등권을 침해한 것으로 본 것이다. 이에 유권자가 후보와 정당을 따로 투표하는 '1인 2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도입을 명했다. 이후 1인 2표제는 2004년 총선, 2006년 지방선거 기초의원 선거까지 확대 적용했다. 현재 각 정당은 비례대표 명부를 선거관리위에 등록하고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할당 받는다.

선거철이면 각 정당은 비례대표 모집 공고를 낸다. 이후 모집 인원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추천관리위원회 심사 등 당헌·당규 선출방법에 따라 후보를 확정하고 번호를 매긴다. 일정한 기준도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각 정당 비례대표 후보의 50% 이상은 여성으로 채우되 명부의 홀수는 여성이어야 한다. 비례대표 여성 할당제라 불리는 이 제도는 여성의 공직 진출을 장려하고자 마련됐다. 지난 4·11총선에서 각 당은 여성을 비례대표 1번으로 낙점했다.

여야 정당은 금배지를 대가로 이들의 상징적인 삶을 정치영역으로 끌어들인 셈입니다.

새누리당은 과학계를 대표하는 엘리트 여성을 택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의 선택은 고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터 대표를 낙점했다. 통합진보당은 농민 출신 윤금순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을 1번으로 내세웠다.

자유선진당은 의사 출신 문정림 대변인을 첫번째로 공천했다.

모두 여성이란 공통점이 있지만 소속 정당의 색깔만큼이나 살아온 삶의 궤적은 제각각이었다. 여성·복지·노동·장애인 등 특정 분야와 관련한 전문성을 갖췄다는 점을 장점으로 뽑았다.

한데 6·4지방선거를 앞두고 비례대표제의 선출방식과 일정한 기준이 훼손된 것 같아 안타깝다. 새누리 충북도당이 비례대표를 공천하는 과정에서 '낙하산 비례설'이 회자된다. 최근 지역 정가가 시끄러운 하나의 이유다. 배경은 이렇다.

새누리당 충북도당이 지난달 20일 비례대표 공모를 마감한 결과 모두 39명(광역 7명·기초 32명)이 응모했다. 이 가운데 광역 비례는 7명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32명은 기초 비례로 분류됐다. 또 광역 비례 7명 중 3명은 여성, 4명은 남성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여성 광역 비례는 3명이 아닌 최종 2명이 응모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광역 비례에 응모했던 이 모씨가 기초 비례에 응모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광역 비례가 3명인 것으로 발표된 것은 기초 비례에 응모한 A씨를 광역 비례로 체급을 변경시켜 주기 위한 '그들만의 꼼수'로 보여 진다.

당초 청주시의원 비례대표를 신청했다가 광역 비례로 전환한 A씨는 새누리당 충북도당에서 월급을 받던 당직자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이 '월급 당직자'를 비례대표 1번으로 만들기 위해 공천관리위원회 재구성하는 등 각종 편법을 동원했다는 얘기가 된다.

논란이 일자 새로운 외부 인사 영입에 부심하고 있는 눈치다.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주민들 시각이 냉랭할 수밖에 없다.

주민을 위한 진정성 보여야

이러한 정치문화는 정치인과 국민을 괴리시키고 정치불신 풍조를 만연시키기 마련이다.

과도한 권력지향의 투쟁의식, 승자독식의 비타협적 정치행태, 경쟁자를 인정하지 않는 비관용적 태도 등은 민주화의 진전에도 구태로 남아 있는 행태다.

정치는 아무나 할 수 있고 또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지방 정치는 주민의 생명과 안녕, 일상생활에 직간접으로 중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다. 지방 정치지도자를 선출하는 일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만큼 신중하고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정치는 실험대상이 될 수 없으며 참신성이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적절한 경륜과 효율적 업적을 기반으로 한 정치지도자가 성공적 리더십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이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각 정당은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의 정치를 구현하려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거짓의 정치로는 민심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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