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정치 개혁실패 유감

2014.05.13 11:05:09

안수길의 칼럼집에 '신(新) 6조지'라는 글이 있다.

소설 '육조지'를 떠올리며 당시(1997년) 혼탁한 대선 선거열풍을 꼬집은 내용이다.

소설 '육조지'는 군부통치시절 엉뚱한 오해로 억울하게 비둘기집(감방)신세를 졌던 작가가 범법자들의 허물어져가는 삶의 단편을 그린 일종의 옥중 체험기다.

순사는 때려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늘여 조지고, 도둑놈은 먹어 조지고…. 그래서 수감자의 말로는 어쩔 수 없이 막된 골목에 처박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6조지를 방불케하는 선거판

칼럼은 이를 토대로 선거 때마다 잠복기를 지난 병원균이 발동하듯 몰아치는 열풍, 그것이 흡사 범법자들의 '6조지'를 방불케 한다고 표현했다.

선거에 입후보한 출마자의 참모는 자금을 긁어 조지고,

말단 운동원은 돈을 뿌려 조지고,

선관위는 탈법을 엄포로 조지고,

경쟁자는 상대후보를 흔들어 조지고,

입후보자는 공약을 튀겨 조지고,

유권자는 공약에 속아 조진다.

여기서 '조지다'는 여러 가지 사전적 풀이가 있다. 대체로는 '때리다', '망치다' 등의 속된 말로 통한다.

20여년이 흘렀지만 선거 풍속도는 그때와 다를 게 없다. 아니 더 혼란스럽다. 6·4지방선거를 겨냥해 이러다 나라 망치지 싶은 구태정치 행태가 너무 뜨겁게 너무 어지럽게 불고 있다. 정치개혁은 속과 겉 다른 그들만의 구호다. 원칙은 없고 권력만이 난무할 뿐이다.

정치 신뢰도는 그래프의 최저 한계선을 그린다. 입후보자들은 비자금 마련으로 빈혈증을 앓고 있다. 정당은 헤쳐모여를 거듭하는 1회용으로 전락됐다.

밤과 낮이 다른 박쥐형 배신도 난무한다. 정치적 계산이라면 최하수의 계산이요. 출세전략이라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태다. 정치도 인간들이 하는 놀음인데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 건달정치에 가깝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달 초 기준 충북에서만 60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례가 접수됐다.

위반 유형은 기부행위와 비방·흑색선전, 문자메시지 이용, 허위사실 유포 등이 주류를 이뤘다. 일부는 조사 중에 있다. 선관위가 고발 조치를 취한 사례도 적잖다.

충북교육감 선거는 보수 성향 후보들의 단일화 시도가 탈락한 후보들의 잇따른 불복으로 감정의 골만 깊게 한 채 실패로 돌아갔다. 이런 행태로 유권자는 물론 교육계조차 선거 자체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후보 선정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이유로 결정에 불복한 6·4지방선거 예비후보들이 잇따라 수사기관에 의혹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충북도교육감 보수 진영 최종 단일 후보 선정에서 탈락한 뒤 독자 출마를 선언한 한 예비후보는 '비전교조 출신 충북교육감 단일화 추진위원회'에 대한 수사를 경찰에 의뢰했다.

새누리당 통합 청주시장 경선 과정에서 패한 한 후보는 확정된 후보를 고발했다. 당원 명부 사전유출 의혹에 따른 이유에서다.

새누리당 충북도당의 비례대표 내정설이 현실화됐다. 공천심사위원들은 거수기에 불과했다. 심의는 허울뿐이었고 현역 국회의원들의 입김에 따라 사실상 결정됐다. '스피커 폰 공천'으로 낙점된 후보가 소신 의정활동을 펼칠지 의구심이 든다. 새정치민주연합 충북도당의 비례대표 선정도 시대에 동떨어진 구태공천으로 눈총을 샀다.

자질없는 정당·후보 심판해야

6·4 지방선거는 향후 지방자치 4년의 성패가 걸려 있는 중대한 선거임에도 주인인 유권자들의 의지는 없고 중앙정치권의 이해관계만 판을 치고 있는 셈이다. 유권자들을 우롱하고 그들만의 권력만을 치켜세우는 행태다.

지방자치의 본질은 지역의 문제를 지역 주민들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데 있다.

지금부터라도 정당과 후보자들을 꼼꼼히 챙겨야 하는 이유다. 내가 이 지역의 왕이고 주인이라는 오만(傲慢) 속에 갇혀 있는 정당과 후보들을 투표로 꼭 심판하자.

자질과 능력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들의 몫으로 되돌아옴을 이번 세월호 참사가 보여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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